▲책 <집의 귓속말>
아트북스
나는 40대의 무주택자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동료들의 대화에서 얻어들은 정보로 '집'에 투자하여 '재테크'라는 것을 해야 하나 고민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성공하지 못했다. 초기 투자금도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버는 것보다 집값이 더 빨리 오르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내 집 마련의 '때'를 놓치고 났더니 나도 모르던 사이, 내 소유의 주택이 없는 비혼의 40대 여자가 되어 있었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때는 '혼자라서 속 편하겠다'던 친구들은 '그렇게 혼자 늙어가면 어쩌냐'면서 걱정을 대신하는 중인데, 나는 그저 서로가 겪어내지 않은 삶에 대한 손쉬운 판단이겠거니 넘기고 있다. '혼자라서 속이 편했던' 적도 없고 '혼자 늙어가는 것'이 그리 걱정되지도 않으니 말이다.
다만, 미래의 내 삶을 그려볼 때, 그 시작은 항상 정해져 있다. 바로 일터에서 내어 준 숙소의 사용 기한이 다한 후, 나의 집을 마련하는 '그날'이다. 오늘은 책 <집의 귓속말>을 통해 내가 갖고 싶은 집에 대해 상상해보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아파트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 물건, 장소, 취향이 뭔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 생활에서 중요한 것들을 순위 매겨 재배치해봤다. 그랬더니 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내 삶의 중심에서 자리한 채 피로감 주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씩 무심하게 그것들을 지워나갔다. 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내 인생이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향으로, 어디쯤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 날이.아마, 그날부터였을 거다. 더 늦기 전에 내 집을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날이. - 15쪽
<집의 귓속말>은 건축사인 저자가 가족과 함께 살아갈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이후, 집을 짓고 입주한 후의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아파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할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집이라는 것은 단순히 '예산'에 맞춰 평면을 그린 후, 건물을 올려 만드는 게 아니다. 저자에게 집 짓기는 가족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를 구현하는 작업이었다. 이 결심은 내가 처음으로 '아파트를 사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고, 고향에 내려가서 원하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상상하기 시작한 날을 되짚어보게 했다.
2000년대 초반이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일터 5분 거리의 원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식당과 거실, 침실을 구분하는 문도 없이 통으로 트여 있던 작은 원룸은, 집이라기보다는 지친 일과를 끝낸 후 잠시 잠을 자고 나가는 숙소일 뿐이었다.
기숙사에서 10년도 넘게 살아왔던 나에겐 부족할 것 없는 방이었지만, 편하게 쉴 수 있는 나의 공간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벌써 사회생활 20년 차에 가까워지고 있고, 몇 개의 도시를 거쳐서 지금 살고 있는 포항까지 옮겨왔지만, 내가 거쳤던 몇 채의 원룸들이나 전세 아파트들도 '내 집'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여전히 어느 곳에서도 정착하지 못한 이유도, 내가 살아갈 '나의 집'을 갖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재테크로서의 집을 포기한 이후로, 내게 집은 '재산'으로써 가치를 불려야 하는 투자처가 아니라, 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집'을 자산의 가치로써 판단하지 않겠다 결심했더니, '아파트'라는 허공에 떠 있는 육면체의 공간에 애착을 갖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을 그리면, 고향 집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나는 언젠가 고향에 '나의 집'을 지을 생각이다. 가족들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고, 부모님의 인생을 품고 있는 그런 '우리 가족의 집' 말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아내는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였던 작가 이석원의 에세이를 빗대어 '보통의 집'을 만들어보라고 농담을 던졌다. 내가 물었다.
"보통의 집은 어떤 집인데?"
"음…… 그냥 따뜻하고 시원하고 튼튼하고 안전하고 밝은 집. 무섭지 않은 집, 밖에서 봤을 땐 누구라도 괜찮은 집이구나 느낄 만한 집. 으스대거나 폼 잡는 허세가 없는 집, 집 안이 집 바깥보다 더 기분 좋은 집, 계절과 날씨를 담을 수 있는 집, 저녁에는 멋진 노을을 보고 밤에는 별과 달을 볼 수 있는 집, 비 새는 집,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일상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는 집."
"……"
"……"
"너무 어려운 집이네." - 31쪽
저자가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은 집을 결정하며 나누는 대화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한 나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보통의 집'에 대한 나의 고민도 이미 2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2년 전부터 엄마와 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매달 가족의 소식을 담은 신문을 만들고 있다. 가족으로부터 기사를 받아서 편집한 후, A3 한 장을 반으로 접은 형태로 출력하여 각 집에 우편으로 보낸다. 이 신문을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제안했던 기획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우리 가족의 집'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