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당시 여수의 관외 사전투표함
정병진
청양군선관위가 뚜렷한 법령 근거 없이 4.15 총선 투표지 보관 박스를 '임의 개함'한 사실이 드러나 파장이 일 전망이다. 선관위가 보관 중인 봉인 투표지 박스를 임의 개함한 건 지난 십 년 사이 알려진 사례만 이번까지 세 차례여서 재발 방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청양군선관위는 시흥의 한 고물상에서 발견된 4.15 총선 사전 투표지 유출 경위를 확인하고자 지난 21일 보관 중인 관외 사전투표지 박스를 열어 실물 투표지 1778매를 확인했다.
그리하여 관외 사전 투표지 중 유효표(1751매) 중에서 문제의 훼손된 투표지와 일련번호가 동일한 실물 투표지를 찾아내 중앙선관위를 통해 해명 자료를 발표하였다.
이 자료에서 중앙선관위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2020. 7. 21.(화) 청양군선관위는 정당추천위원 참관 하에 관외사전투표지 확인결과 투표용지교부수와 투표수가 일치(1,778매)하였고, 유효표(1,751매)에서 언론 기사의 일련번호와 동일한 관외사전투표지 실물을 확인하였습니다."
지난 4일 경기도 시흥의 한 고물상에서는 반으로 찢어진 4.15 총선 사전 투표용지가 발견됐다. 이 투표지는 한 시민단체가 중앙선관위에서 나온 트럭을 따라가 폐지 더미에서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의 해명 자료를 보면, 유출 경위 파악을 위해 청양군선관위가 '정당추천위원 참관 하에' 보관 중이던 관외 사전투표지 박스를 개함하였다. 그래서 전체 실물 투표지의 일련번호를 낱낱이 확인해 훼손 투표용지와 동일한 투표지를 찾아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지의 청인, 관리관 도장, 일련번호 등을 두루 확인한 결과 문제의 훼손된 투표지는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해 설치된 특별사전투표소(경북 경주시 양남면제2사전투표소, 현대차 경주 연수원)에서 인쇄 중 훼손된 청양군선관위의 관외 사전투표용지"임을 확인하였다고 말한다.
이어 "사전투표가 끝난 뒤 선거관계 서류를 경주시선관위에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훼손된 투표용지 등 투입봉투'가 누락돼 다른 물품과 함께 폐기되는 일이 빚어졌다"는 사실도 파악해 '관리 실수'의 '책임을 통감하며 송구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의 해명과 사과로 이 문제가 봉합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고물상에서 발견된 투표용지의 유출 경위는 파악돼 다행이다. 하지만 그 확인 과정에서 청양군선관위는 '위원장의 결재'만으로 관외 사전투표지 보관 박스를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임의 개함하였다. '정당 추천위원 참관 하에' 봉인을 해제하고 투표지를 확인했으니 괜찮은 게 아니다.
선거법에 의하면 모든 투표지는 개표 종료 이후 투표지를 박스에 넣어 위원장 도장을 찍고 봉인해 당선인의 임기 중까지 보관하게 돼 있다(법 제186조). 일단 봉인이 된 상태의 투표지 박스는 구·시·군 위원회 위원장의 직권으로 임의 개함할 수 없다.
이 같은 '재검표' 행위는 선거 소청과 소송(당선무효소송, 선거무효소송)으로 법원 명령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기에 선거 후보자나 선거인이 선거 결과에 의구심이 있거나 불복하는 경우 법원에 절차를 밟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양군선관위는 법원의 '재검표' 결정이 난 게 아닌데도 위원장의 결재만으로 투표지 보관 박스의 봉인을 해제하였다. 그런 뒤 관외 사전투표지 전량을 확인함으로써 사실상 재검표 행위를 하였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 공보과의 한 주무관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도 개선과 지침 보완이 필요한 사항 같다"고 하였다. 31일 또 다른 주무관은 "의혹제기가 있어서 위원장 내부 결재로 개함한 것"이라며 "해명 자료 이외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청양군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와 충남도선관위까지 함께 논의해서 개함을 진행한 것"이라며, "공식 해명과 답변은 중앙선관위 공보과를 통해 들으라"는 말만을 되풀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