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인뉴스
학교 대신 다시 찾은 노래
한솔초, 수곡중, 하이텍고 특수반에서 학업을 마친 정성인씨는 충청대학교 컴퓨터정보과에 입학했다. 장애인으로 삶을 개척하기 위해선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데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 유일한 살길이라고 아버지 정현모씨는 생각했다. 학교만 갔다 오면 트롯을 듣고 따라 부르는 아들이지만 그것은 취미생활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 성인이는 노래를 정말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했어요. 늘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불렀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가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어요?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지만 음악학원이나 가수가 되는 학원에 보낼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정성인씨는 아버지 권유대로 충청대 컴퓨터정보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역시 역부족이었다. 결국은 자퇴하기에 이르렀고 학교 대신 노래를 선택했다.
그는 수십 명이 한곳에 앉아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 주민센터 노래교실과 MBC충북, KBS청주, CJB 3사 방송국 노래 교실엘 무작정 찾았다. 따라 부르고 박수를 치는 것만도 좋았다. 그 기간만 무려 9년이다. 트롯가수가 오는 행사라도 개최되면 찾아가 노래를 들었다. 노래하는 가수를 멀찍이서 바라보는 것만도 좋았다.
매일 7~8시간을 노래에만 집중했고 듣고 부르고, 듣고 부르고, 수도 없이 반복했다. 가끔 용돈이라도 생기면 홀로 코인노래방에 가서 트롯 연습을 했다. '배우사랑 예술단'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다. 메인 무대에 선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가 위로가 된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 정성인씨는 듣고 따라 부르는 것에서 '나도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래교실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노래교실에서 정성인씨는 사실 존재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는데 노래를 부르고 나서 이어지는 칭찬과 박수소리를 그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가수가 되고 싶다'는 정성인씨 꿈은 더욱 간절해졌다.
가수는 유일한 지푸라기이자 모든 것
그러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성인씨는 무지막지한 고통 속에 또다시 빠지게 된다. 예전에 한 수술에 문제가 생겨 2014년과 2019년에 또다시 수술을 해야만 했고 깊은 시련에 빠지게 된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몸은 나약해져만 가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으며, 노래보다 장애를 먼저 바라보는 시선도 힘겨웠다. 급기야 삶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밥을 먹을 때도 소리 없이 울고 눈물을 흘렸어요. 죽고 싶다는 말을 수없이 하고 왜 자기를 낳아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울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버지 정현모씨는 그런 아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망감에서 어떻게든 아들을 빼내와야만 했다. 정현모씨가 가수라는 두 글자를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정성인씨와 아버지 정현모씨에게 가수는 유일한 지푸라기였고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