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174호 탈해왕릉(경주시 동천동 350-7)
정만진
신라 2대 임금 남해왕은 탈해를 맏사위로 삼았다. 탈해는 마침내 신라의 네 번째 임금이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남해왕은 재위 5년 '탈해가 어질다(賢)'는 말을 듣고 사위로 삼아 정사를 맡겼으며, 3대 임금 유리왕은 세상을 떠나면서 '선왕(남해왕)께서 어진 사람(賢者)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왕위를 탈해에게 전해야 마땅하다'고 유언했다.
기록은 한결같이 탈해를 현자(賢者)로 기록하고 있다. 속임수로 남의 집을 빼앗은 인물을 현자로 칭송하는 이 안목은 옳은 인식인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고가의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이 우러름을 받는 세태는 진정 사회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인가?
고가의 집을, 그것도 여러 채 가진 사람은 현자인가?
'집'을 잃은 겨레가 타국의 노예가 되듯이 집이 없는 가족도 숱한 설움을 겪게 된다. 이는 의식주(衣食住)를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요소로 규정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입을거리와 먹을거리가 사회 전반의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주택 부문에서는 계층간‧세대간‧지역간 갈등이 심각하다.
집이라는 어휘에는 크게 주거용 건물이라는 의미와 가족 및 가문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집이 무너졌다"라고 하면 주택이 붕괴되었다는 뜻도 되고, 가정이나 가문이 몰락했다는 의미도 된다. 즉 집은 한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건물을 의미한다고 정의할 만하다. 집은 기본적으로 가족생활을 지켜주는 근거지인 것이다.
예로부터 "한뎃잠을 잔다", 주거부정(住居不定), 풍찬노숙(風餐露宿) 등 생활공간이 일정하지 않은 이들의 불안정한 삶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많이 존재해왔다. 이는 전세나 월세 가족이 많은 국가는 위기 국면에 봉착해 있다는 뜻이다. 채집경제를 영위한 구석기 시대 때는 집이 없었고, 정착 농경생활을 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주택이 생긴 역사적 사실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을 했다. 2017년도를 기준으로 서울 시민의 49%가 무주택 가족이다(나라 전체의 무주택 가족 비율은 44%). 대략 30년 전인 1985년에는 50%였다(나라 전체는 30% 조금 상회). 아직도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중간에 머무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떠돌이' 구석기 시대인가?
우리나라 정부는 계속 집을 지어 왔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집값이 너무 높아 서민과 청년들은 집을 살 수 없었고, 부자들만 여러 채 보유하게 되었다. 2020년 7월 29일 오전 9시 현재 인터넷에는 '부동산 대책에도 오르는 집값... 서울 소형아파트 4억 원 돌파'라는 기사가 올라 있다. 의식주가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인데 소형 아파트조차 4억 원을 상회하면 서민들과 청년들이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게 될 전망이 없다. 당연히 국가공동체에 돌이킬 수 없는 불만을 가지게 된다. 이는 나라의 앞날을 생각할 때 너무나 크고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4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왜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이 남보다 잘 살려는 경쟁심리와 욕망에 젖어있기 때문일 듯하다. 사람은 한번 기득권을 가지게 되면 그걸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아득한 삼국시대에도 집을 둘러싼 기득권 조치, 달리 말해서 '가사(家舍)규제'가 대단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반증이다.
가사규제에 따라 특정 계층 외에는 담장을 높게 쌓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솟을대문도 금지했다. 도깨비무늬를 넣은 마구리기와, 즉 귀면기와 사용도 금지했다. 지붕에 막새기와를 쓰는 것도 허가하지 않았다. 천장에 우물반자 무늬의 장식 조정(藻井)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했다. 《삼국사기》 제 33권 잡지의 '가옥' 편 중 진골과 6두품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진골 : 방의 길이와 너비가 스물넉 자를 넘을 수 없다. 높은 처마를 설치할 수 없다. 당나라 기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처마 끝에 물고기 형상의 조각물을 장식하지 못한다. 금 · 은 · 동과 오방색으로 집을 꾸밀 수 없다. 담장에 석회를 바르지 못한다. 3층 계단을 설치할 수 없다.
6두품 : 방의 길이와 너비는 스물한 자를 넘을 수 없다. (진골 제한 외에) 담장은 여덟 자를 넘지 못한다. 2층 계단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 마구간에 말을 다섯 마리만 수용해야 한다. (5두품 이하 일반백성 부분은 인용 생략)
《삼국유사》에 따르면, 통일신라 당시 경주에는 금입택(金入宅), 즉 금을 입힌 집이 39채 있었다. 집으로 신분을 구별하고 과시하는 물신주의의 극치인데, 자유주의 사회인 현대에 이르러 그것이 일반화되었다. 21세기의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를 몇 채 소유하고 있고, 그 아파트들이 몇 평이며, 소재지가 어디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가늠된다. 아파트 분양 때 "최고 학군"이라는 선전문구가 사용되면 최상류층 밀집 거주지라는 뜻이다.
일반 서민과 흙수저 청년들이 금입택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헌법 제35조)'가 있다고 하니 그저 가족들이 소박한 안정을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자기집을 소망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집들조차 평생 월급을 쓰지 않고 모아도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값이다. 의식주 해결이 주는 최소한의 행복마저 잃은 것이다.
문제를 해소하려면 누구나 집을 한 채만 가질 수 있도록 강제하면 된다. 금입택에 사는 것까지 금지하면 전제주의가 되니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집을 여러 채 소유한 국민이 300만 명을 넘고 그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기득권자들인데,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에게 월급 모아 자기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할까 의심스럽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가 주택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다
헌법은 사람답게 사는 행복추구권을 말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집 때문에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인간소외 지경으로 내쳐져 있다.
전쟁‧독재‧질병‧가난 등이 인간소외를 일으키는 주범인데, 평생 집 없이 살아야한다는 현실 앞에서 청년들이 절망하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쥔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의 다수가 강남 금입택 보유자라는 점 또한 대단한 걸림돌이다.
한 가족이 자기 집에서 오순도순 함께 사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러한 인식이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잡게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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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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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 집 한 채'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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