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선생의 묘소가 있는 서울 현충원
정만진
국가보훈처 누리집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살펴보면 최고 등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추서 받은 지사는 모두 30분이다. 다음 등급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지사는 92분. 그리고 건국훈장 '독립장' 822분, 건국훈장 '애국장' 4347분, 건국훈장 '애족장' 5777분, 건국포장 1331분, 대통령표창 3532분이다.
서훈이 취소된 지사는 한 명도 없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30분을 타계 연도순으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01. 민영환(閔泳煥, 1861~1905) 계몽운동
02. 조병세(趙秉世, 1827~1905) 계몽운동
03. 최익현(崔益鉉, 1833~1907) 의병
04. 이 준(李 儁, 1859~1907) 계몽운동
05. 허 위(許 蔿, 1854~1908) 의병
06. 이강년(李康秊, 1858~1908) 의병
07.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열투쟁
08. 강우규(姜宇奎, 1855~1920) 의열투쟁
09. 손병희(孫秉熙, 1861~1922) 3.1운동
10. 김좌진(金佐鎭, 1889~1930) 만주방면
11. 이승훈(李昇薰, 1864~1930) 3.1운동
12.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열투쟁
13.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임시정부
14. 오동진(吳東振, 1889~1944) 만주방면
15. 한용운(韓龍雲, 1879~1944) 3.1운동
16. 김 구(金 九, 1876~1949) 임시정부
17. 김규식(金奎植, 1881~1950) 임시정부
18. 조만식(曺晩植, 1883~1950) 문화운동
19. 서재필(徐載弼, 1864~1951) 계몽운동
20. 이시영(李始榮, 1869~1953) 임시정부
21. 신익희(申翼熙, 1894~1956) 임시정부
22. 조소앙(趙素昻, 1887~1958) 임시정부
23. 김창숙(金昌淑, 1879~1962) 임시정부
24. 이승만(李承晩, 1875~1965) 임시정부
25. 임병직(林炳稷, 1893~1976) 미주방면
서른 분이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스물다섯 분만 소개했다. 나머지 다섯 분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중국인들이다. 그래서 운동 계열도 '의열 투쟁, 임시정부, 미주 방면, 계몽운동, 문화운동, 의병,
3.1운동' 식이 아니라 '독립운동지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진기미(陳其美, 1876~1916) 독립운동지원
손 문(孫 文, 1866~1925) 독립운동지원
진과부(陳果夫, 1892~1951) 독립운동지원
장개석(蔣介石, 1887~1975) 독립운동지원
송미령(宋美齡, 1897~2003) 독립운동지원
망국 이후 독립장 서훈자, 대한광복회와 의열단 단원 많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서훈 받은 분들은 권영만, 김경태·김한종·김진만·우재룡·장두환·채기중·한훈 등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 단원들, 김상옥·김익상·김지섭·나석주·신채호·장건상·고인덕·곽재기·권준·김대지·김병태·박재혁·이종암·최수봉·한봉근·황상규 등 의열단(義烈團) 단원들. 그리고 김동삼·남자현·박열·박은식·신돌석·양기탁·여운형·이동녕·이동휘·이범석·이봉창·이상재·이재명·장인환·전명운·지청천·홍범도 등의 맹렬한 지사들이다.
의열단 단원 중 김시현 지사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김시현 지사는 1923년 3월 의열단의 제2차 암살 파괴 거사 때 일제에 체포돼 1929년 1월 29일까지 5년 10개월에 걸쳐 대구형무소에서 수형 생활을 했다.
그는 풀려난 뒤 만주로 가서 다시 의열단 활동을 하던 중 변절자 한삭평을 처단했다. 그 일로 일본 나가사키 형무소에 4년 7개월 동안 수감됐다. 1939년 9월 출감한 그는 중국과 서울을 오가며 군자금을 모으고 동지를 규합하다가 1944년 4월 북경에서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경성 헌병대에 감금됐다. 그를 감옥에서 꺼내준 것은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해방이었다.
김시현은 여운형 암살, 김원봉 월북, 김구 암살 등을 겪은 후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 1950년 5월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고향 안동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10만 명의 청년들을 굶어 죽게 만든 국민방위군 사건, 수십 만 국민을 무단으로 처형한 보도연맹 사건을 일으키는 등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패는 점점 더 기승을 부렸다.
대통령 이승만 암살을 시도한 김시현
김시현은 이승만을 제거해야 나라가 바로설 수 있다고 판단했다. 1952년 5월 민주국민당을 탈당한 그는 6월 25일 부산 충무동 광장에서 열린 전쟁 2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 이승만을 저격하려다가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있던 중 4월혁명으로 석방됐다.
김시현은 1960년 민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다시 당선했다. 하지만 국회의원 생활은 몇 달에서 멈췄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대통령 암살 미수범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도 독립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