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나눠줄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김남희
"할아버지, 마스크 꼭 끼셔야 해요."
밥퍼 앞마당의 한편에선 노재완 밥퍼나눔운동본부 주임이 맨얼굴의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건네고 있다. 마스크를 나눠주는 그의 손이 마냥 넉넉하진 않다. 현재 밥퍼는 마스크 등 방역에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구매할 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비축해둔 마스크가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예요. 다행히 얼마 전 누군가 대량의 마스크를 후원해줘 오늘은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었어요. 앞으로가 문제죠. 언제 또 마스크 후원이 들어올지 알 수 없잖아요. 마스크 때문에 매일이 전전긍긍입니다."
이날은 후원이 없어 여분의 마스크와 손소독제 등을 넣은 응급지원키트를 만들지도 못했다. 모든 비용을 후원금으로 충당하는 밥퍼는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후원금이 줄었다. 마스크나 응급지원키트 속 용품을 구매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운영 자체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태다.
"정기 후원금 말고도 목돈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 보통 회사에서 단체 봉사를 왔다가 후원금을 주고 가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단체 봉사가 거의 없어요. 그 외에 모든 후원의 손길도 줄어들었어요. 만드는 음식량은 늘고, 비싼 도시락 용기까지 사야 하는 마당에 정작 후원금은 줄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전기요금이나 수도세 내기도 빠듯한 상황이에요."
밥퍼의 운영이 어려운 건 내부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김미경 본부장은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끼리 만나지 말라는대 자꾸 한 곳에 사람들을 불러들인다고 주변에서 민원이 자주 들어온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밥 한 끼가 지닌 힘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밥퍼는 결코 다시 문을 닫을 생각이 없다. 김 본부장은 그 이유를 밥퍼가 나눠주는 도시락의 가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밥 안에는 한 끼 식사보다 더 큰 가치가 있어요. 밥퍼가 도시락을 나눠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고, 그 자식들도 부모가 밥퍼에 와서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으니 안심하고 일터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밥퍼가 어려운 어르신들의 식사를 제공하는 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녀에게도 긍정적인 힘을 주는 일인 거죠. 그러니 절대 밥퍼의 활동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밥퍼가 맡은 궁극적인 역할이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자식이 있어 나라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진짜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이죠. 밥퍼는 그런 분들을 돕고 돌보는 일을 합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빈틈을 민간에서 채우는 거죠."
그리고 이를 제대로 해내려면 국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에선 저희를 비롯해 이런 역할을 수행할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춘 센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뒷받침해줄 국가의 지원이 부족해요. 국가에서 민간 무료급식소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게끔 제도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녀는 바쁜 업무 때문에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국가 재난 시기 독거노인과 가난한 노인을 직접 만나서 돕고 있는 민간단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마스크 등 기본 방역 물품은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하루를 한 끼로 버티는 이들에게 무료급식을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들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민관이 찾아야 한다. 만약 밥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하루에만 1200명씩 찾아오는 노인들은 어떻게 될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밥퍼를 다녀오는 길에 봉사자 김세훈씨가 "더 큰 걸 얻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 게 자꾸 떠올랐다. 밥퍼나눔운동본부는 일단 7월 말까지 도시락 나눔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코로나19의 확산 정도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7월이 되기 전에, 8월이 되기 전에, 그리고 12월이 되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것을 얻어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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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할아버지의 이 말에 다시 주먹밥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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