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의 외벽은 물론, 내부 벽면에도 학원 홍보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서부원
그는 '봉남'에 산다고 했다. '봉남'은 봉선동의 남쪽을 가리키는 말로, '봉북'의 상대 개념이다. 봉선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차선 봉선로를 경계로, '봉남'과 '봉북'으로 나뉜다고 한다. 이 해괴한 용어를 봉선동 주민은 물론이고 광주에 사는 이들이라면 대개 들어 알고 있다.
정확히는 봉선2동을 남북으로 가르는 개념이다. 행정구역상 봉선동은 1동과 2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도심과 인접한 봉선1동은 아예 광주의 '강남'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래선지 봉선1동 주민들은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는 외지인들에게 봉선동에 산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봉선1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봉북' 주민들의 위화감도 만만치 않다. 도로 하나를 사이로 아파트값이 천양지차인 까닭이다.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예전 같으면 봉선동에 산다고 했겠지만, 몇 해 전부터 '봉남'과 '봉북'을 따지다가, 요즘엔 아예 아파트 브랜드로 답한다고 한다.
'봉남'에 산다는 그는 초등학교도 그곳에서 나왔다고 했다. 봉선2동 관내에는 초등학교가 세 곳인데, 공교롭게도 한 곳은 '봉남'에, 다른 한 곳은 '봉북'에, 나머지 한 곳은 절묘하게 학군이 양쪽에 걸쳐 있다. 그런 까닭에 '봉남'과 '봉북' 대신, 학교 이름으로 구분 짓기도 한다.
'봉남'의 아이들과 '봉북'의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 초등학생조차 그들 사이의 '태생적' 격차를 이미 알고 있으며, 서로 '신분'이 다르다는 걸 선선히 받아들인다.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 이곳 광주에서 '세습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봉선동이다.
'봉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직업군을 헤아려보는 데는 다섯 손가락이면 족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의사, 법조인, 교수, 기업인 등이 아니면 '봉남'에 거주하거나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웬만한 중산층이라도 그곳의 집값은커녕 전셋값조차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평수라도 5~6억 원은 기본이고, 조금 괜찮다 싶은 아파트는 10억 원을 호가한다. 지금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와 견준다면, 집값도 전셋값도 3배 가까이 차이가 나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아예 다른 지역 사람들은 감히 넘보지 말라고 엄포를 놓는 듯하다.
학군이 겹친 초등학교에서는 빈부 차로 인한 갈등이 심심찮게 벌어진다고 한다. '봉남'과 '봉북'끼리의 학교라고 이러저러한 갈등이 왜 없을까마는, 적어도 거주하는 아파트에 따라 반목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봉남'의 학교로 전학을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몇 해 전 어느 지역에서 분양 아파트 주민들이 펜스를 세워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통학로를 막은 일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가난한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를 나 몰라라 하는 작태라며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펜스는 밖이 아닌 마음 속에 들어와 있다.
'봉남'에서 줄곧 살아온 그에게 '봉북'에 사는 친구는 없다고 했다. 기꺼이 손을 내밀기도 쉽지 않지만, 내밀어도 이내 뿌리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학원엘 다녀도 끼리끼리 모이게 되는 이유를 그는, 주저 없이 '봉북' 아이들의 자격지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곳 광주에선 봉선동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벼슬'이 된다. 봉선로를 걷노라니, 과거 TV의 한 아파트 광고에서 나왔던,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가 당신이 누구인가를 말해 준다'는 카피가 떠올랐다. 도로 위에는 이곳이 광주의 '강남'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값비싼 외제 차가 즐비하다.
해당 광고가 처음 등장했을 땐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며 너도나도 손가락질해댔지만, 도리어 우리 사회는 초등학생조차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고 적는 훨씬 더 천박한 세상이 됐다. 부동산 투기의 광풍은 멈출 줄 모르고, 청년들은 '이생망'을 외치며 로또에 한 가닥 희망을 건다.
'맨발의 성자' 이현필 선생의 가르침은 어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