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폐업통보 이후 멈추어버린 대구 한국게이츠 공장
연정
"20년 전부터 문 닫는다는 말은 매년 했던 말이에요. 위에 관리자들이 이런 식이면 문 닫고 갈 수 있다고 했어요. 20년 동안 계속 들어왔던 말이니까 솔직히 양치기소년처럼 믿지 않았던 거죠. 근데 아시아 사장이 와서 그렇게 얘길 하니까 이거는 봉변인 거지." (송윤주(가명))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 못 했던 건 아니라고 했다. 회사는 걸핏하면 '자본 철수' 운운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특히, 임단협 등 노사 교섭이 있을 때는 자본 철수를 들먹이며 노조 측의 양보를 강요했고, 임단협이 끝나면 그에 대한 보상요구처럼 물량 압박을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맨날 자본 철수한다 이랬어요. 근데 솔직한 얘기로 우리 회사 노조 강성노조 아닙니다. 회사가 고충 있다 카면 충분히 같이 안고 그리했는데... 초시계를 가져와서 재면서 그래가 물량을 산정하는 거예요.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똑같은 컨디션을 갖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주야가 바뀌면 3일은 어벙하게 지 정신인지도 모르고 일하는데." (조성우, 20년 근무)
노동조합은 지난해 임단협도 마무리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2019년 말에 합의가 돼서 마무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사측이 기존 합의 내용을 뒤집으며 개악안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주간 연속 2교대제는 사측에 제안했다가 일거에 단호하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사측의 양치기 소년 같은 반복적인 '자본철수 공갈'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 측면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최근 자동차 산업의 변화 등으로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었다.
"우리는 엔진 업체잖아요. 요즘은 전기차나 친환경차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 일이 줄어 들겠다 생각은 좀 가졌었는데, 너무 빨리 온 거죠. 그것도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면서 한 달 전에." (정재우(가명))
"2~3년 전부터 완성차에 들어갈 물량의 반 이상을 중국에서 들여와 가지고 서울사무소에 바로 넣었거든요. 현대차 이 라인은 우리 거 쓰고, 저 라인은 중국 거 쓰고 이리 했거든요. 사람들은 예감은 하고 있었죠. 서서히 명퇴도 되고 라인도 죽을 거다. 체인으로 들어가니까 타이밍벨트 쓸 필요 없잖아요. 지금은 AS밖에 없는데, 구조조정으로는 회사에 이윤이 덜 남으니까 중국에서 들여오면 더 싸니까 그렇게 한 거죠." (홍영국(가명), 28년 근무)
최근 타이밍벨트 등 한국게이츠 생산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의 확대와 체인 사용 증가로 인한 불안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들은 '설마설마' 했다. 한국게이츠가 2000년부터 20년간 순이익 1041억 원(연평균 52억 원)을 낸 흑자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게이츠는 2019년에도 45억의 흑자를 냈다. 올해 코로나19에도 휴업이나 정부지원금 없이 정상 운영 되던 회사다. 2019년 정년을 앞둔 노동자 10명의 희망퇴직이 있었기에 올해도 그 정도 선의 조치는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뒤통수를 쳤다.
그 음모와 계략이 양치기소년(한국게이츠)에 의한 것인지 늑대(블랙스톤)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둘의 공모에 의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 피해와 책임은 오로지 성실하게 일해 온 양(노동자)들에게만 돌아갔다.
노동조합에서는 한국게이츠에 3~4년 전부터 자동차 산업 변화에 따른 대체 산업 투자를 요구했지만, 회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회사가 선택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국내 생산시설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한국게이츠는 국내 생산시설은 폐쇄하면서 판매법인 GUKC(게이츠유니타코리아)는 국내에 남겨두고 값싼 중국 생산 제품을 현대·기아·GM자동차 등에 공급하겠다고 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와 관련한 책임에 있어 현대자동차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중국 게이츠에서 생산한 타이밍벨트에 대한 납품을 허용한 데 이어 올해는 오토텐션도 중국산 제품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옛날에 우리가 흑자를 많이 낼 때는 한해 80억 120억까지도 냈잖아요. IMF 때도 적자를 낸 회사가 아니라고요. 단지 언제냐면 2008년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 있잖아요. 그때 금융위기 났을 때, 1억 8천만 원인가 적자 났는 거 그거 말고는 없어요. 코로나 때 안 쉬었는데, 이제 보니까 그게 얘들이 폐업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어. 재고 준비해 놓을라고." (박현철)
글로벌 투기자본, 참 알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