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현장에서 기자회견 하는 사월
사월
"결국 저도 대학에 갔어요. 하지만 1학년까지 겨우 다니고 2학년을 마치기 전에 그만뒀어요. 메이크업을 전공했거든요. 그만두고 관련된 일을 조금 했어요.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거나 배우들 프로필 사진 찍을 때 메이크업해주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뭔가 불편했어요. 여성을 보는 시선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어요. 그 후로 여성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발견한 다산인권센터를 다시 찾아보니 수원에 있었어요. 지역운동을 하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활동가가 되기로 했어요.
다산에서는 2016년 7월부터 활동했어요. 처음에는 '딱 3년 동안만 잘 버티자'고 다짐했어요. 이곳 경기도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요. 이주민 공동대책위가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그분들을 만나서 대응해요. 살면서 한 번도 이주민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는데 다산에서 활동하면서 미등록 이주민들을 많이 만났어요. 사업주가 그분들을 대하는 태도는 폭력적이었어요. 농촌에서 천막치고 일하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천막은 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싸웠어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운동을 하면서 법 개정하고 그랬어요. 그 다음엔 사업주가 컨테이너에서 살래요. 이주민들의 인권 침해가 너무 심각해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재미는 있는데 지금은 좀 지치고 갈증이 생겼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있고, 다산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 제가 제일 활동 경험이 적어요. 오래 일한 사람들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발 빠르게 대응하는데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한 활동가처럼 감각을 기를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고요."
활동 5년 차가 된 사월은 아직도 자신의 활동이 미덥지 않다. 어떻게 하면 선배들처럼 기민하게 대처하는 감각이 생길까가 늘 고민이다.
"저는 지금 전략조직팀에서 대중을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역별, 영역별 간담회를 하고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어요. 경기도에서는 인권 조례를 제정할 때, 성적 지향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반대했어요. 이 문제 때문에 지역 단체들이랑 어떻게 하면 인권 조례를 재개정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여기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까 갈등이나 충돌이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웃음). 갈등을 잘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이에요. 아침에 오면 인사만 하고 바로 자기 일을 하는데, 그러지 말고 단 10분이라도 차 마시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어요. 요새 실천하고 있어요.
최근에 3년에서 5년 이하의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했어요. 이명박·박근혜 때는 수원이 촛불집회를 제일 오랫동안 했거든요. 촛불 들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촛불이 없어지니까 활동가를 만나기가 어려워요. 워크숍에서 '평등한 조직, 평등한 지역 운동은 어떻게 만들까'라는 고민을 나누고 약속문을 만들었어요. 이것을 선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을 만나서 함께 토론하고 격려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작년에 '인권재단 사람'에서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인권활동가 설문조사'를 했어요. 나중에 보고회를 했는데 제가 인터뷰를 했어요. '내가 활동기간이 짧아서인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궁금한 거 질문하면 답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이런 주제로요.
다산에 처음 왔을 때,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하고 물어보는 걸 봤어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운동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요. '동료 활동가와 관계를 잘 만드는 일이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활동에 애정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사월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가였다. 특히 노는 일에는 안 빠진다고 했다. '나도 사월과 같은 취향'이라고 하자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인권운동했던 선배들은 현장에 계속 있었으니까 자신들의 경험을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잘못하면 '꼰대'가 될 수 있지만, 활동 경력, 연차, 이런 거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고, 운동할 때 무슨 고민을 했는지를 얘기해 주면 후배들은 용기가 생겨요. 고민이 해결될 때도 있고요. 저는 큰 그림을 못 그려서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오래된 활동가들은 기획하거나 큰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금방 캐치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같이 공유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배 활동가들이 건강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어요. 작년, 재작년부터 몸이 안 좋은 활동가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거든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월은 자신의 활동이 더 풍부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선배들이 경험을 더 많이 공유해줬으면 했고, 건강을 잘 돌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배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월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도 닿아 가슴이 뭉클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그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월을 많이 응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