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 중인 어머니
권태훈
처음부터 싸우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습니다. 병원으로부터 얻은 수술실 CCTV를 처음 열어본 그 날까지도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아마도 병원에서 가족을 잃은 많은 유족이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한 마디 진심 어린 사과가 있어야 했을 그 순간에, "법대로 하시라"는 병원장의 말이 우리 가족을 이곳까지 이끌었습니다.
그렇게 열어본 CCTV는 온통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집도의는 뼈만 잘라놓고 이방저방을 옮겨다녔습니다. 의전원을 졸업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그림자의사가 그 뒤를 이어받았습니다. 수술 중에 대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시트를 타고 붉은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져 고였습니다. 수술 중, 수술 후에 간호조무사들은 고인 피를 대걸레로 쓱 닦아냈습니다.
집도의와 그림자의사, 마취의사가 수술실을 드나드는 동안에도 대희는 계속 피를 흘렸습니다. 감정기관에서는 대희가 쏟은 피가 수술 중에만 3500cc라고 했습니다. 70kg인 제 몸속엔 피가 5000cc 정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도 이 병원에선 대희에게 한 차례도 수혈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고 후 경찰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수술실을 드나든 이유가 밝혀졌죠. 당시에 대희와 동시에 진행된 수술이 모두 3건이었고 의사들은 이 수술방 저 수술방을 옮겨가며 뼈를 자르고 지혈하고 봉합하는 과정을 분업했던 겁니다. 그래서 피를 그렇게나 많이 흘린 대희가 어떤 상태인지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거지요. CCTV에 따르면 대희가 피를 흘리는 동안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 홀로 남아 지혈한 시간만 30분이나 됩니다.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다던 의사는, 심지어 마취과의사와 그림자의사도 동생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공소장에 따르면 "의사로서 출혈 가능성을 고려해 (중략) 적절한 치료를 신속하게 취하여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다...(중략)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이를 게을리하여, 다량의 출혈이 발생하였고 (중략) 적절한 치료나 상급 병원으로의 이송 준비 등을 하지 아니하였고, 수술 후 회복실에 있던 피해자의 혈압, 맥박 등을 세심히 감시하지 아니하였고, 간호조무사에게 피해자의 상태 관찰을 일임하고 퇴근했다"라고 적시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