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박원순 사건'은 이 한 가운데에서 생겨났다. 더 앞을 보면 안희정 사건도 있고 오거돈 사건도 있다.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개별적 일탈 같은 사건이지만, 민주당 계열이 집권한 지방자치단체와 남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 고발과 견제를 위한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방치된 문제는 결국 폭발하였다.
오거돈 때, 아니 안희정 때 전면적인 성찰과 함께 제도적 정비를 하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집권당이자 한국에서 가장 큰 정치집단인 민주당이 뭔가 각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사건은 크게 직장 민주주의와 젠더 민주주의, 두 가지 흐름의 중첩점에서 볼 수 있다. 직장 내 위계에 의한 극도로 수직적인 권력 구조, 이 문제를 조금 더 수평하게 전환하자는 것이 직장 민주주의 논의이다.
그리고 생활 환경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젠더 차이에 의한 불평등을 완화하자는 것이 젠더 민주주의다.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보다 상위 개념은 생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가정에서의 폭력과 의사 소통의 실패 등을 지칭하는 가정 민주주의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민주주의 투사의 두 얼굴
586, 지금까지 우리는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국가 민주주의에 익숙하다. 또 국가 혹은 지자체의 재정 정책과 복지 정책을 얘기하는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와 정책에 대해서 주로 얘기하였다. 이걸 지역, 젠더, 그리고 가족과 같은 좀 더 생활 수준의 민주주의 담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든 게 아니라 배운 것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국가와 싸워서 만드는 민주주의를 우리는 교과서로만 배웠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개념을 직장과 가정, 그런 생활 단위로 연결시키는 것이 민주화 논의의 다음 단계라는 생각을 못한 것 같다.
한 때 '민주주의의 투사'였던 사람이 직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가정에서는 폭력적인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행한 청년 시대를 보냈다고 그게 아무 문제도 아닌 것은 아니다. 엘리트주의, 특히 남성 엘리트주의 시대에 보수든 진보든, 하급 직원에 대해서 권위적이고 일방주의적인 것이 문제라는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그것을 '리더십'이라고 착각하고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민주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정책적 대안을 아예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법규를 비롯해서 몇 가지 제도 정비들을 했다. 그러나 그건 주변부적이고, '이런 것도 했다'는 면피에 가깝다. 생활 민주주의에 대한 좀 더 전면적이고 강력한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그게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민주당이 당으로서 가진 약점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민주당은 수많은 선거를 치루어 왔고, 특히 지난 총선의 압승 이후 더 많은 선거에 나서게 될 것이다. 원래 정당은 그러라고 있는 조직이다. 크든 작든, 선거 때마다 캠프가 만들어지고 정치적 동지와 함께 '영웅 만들기'가 이루어진다. 후보는 누구나 영웅이 되고 이기면 그 영웅 현상이 더 강해진다. 그렇다고 집권하면 '왕국'이 만들어져서는 곤란하다. 그걸 견제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장치가 없다면 선거용 영웅 현상이 소왕국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피하기가 어렵다.
비극을 피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