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낮은산
"그게 말이 되나요?"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진중하게 이야기하던 강연장, 날선 질문이 날아들었다. 이어 질문자는 "정치적 실험을 하는 게 아니냐"며 쏘아붙였다. 몇 해 전 겨울, 한 강연장에서 폴리아모리 관계에 대해 설명하던 홍승은 작가가 실제로 마주했던 질문이다. 홍 작가는 이 질문을 이렇게 되받아쳤다. "실험이요? 저는 제 삶을 갖고 실험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를 폴리아모리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이상한(queer) 관계라고 말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폴리아모리'를 입력하면 무수한 분노를 마주할 수 있다. 난교, 바람, 악의 세력, 타락의 끝, 소돔과 고모라. 그런 단어들을 마주보고 있으면 불현 듯 나와 내 일상이 낯설게 느껴진다. 다정한 아침 인사와 밤 인사, 하루를 채우는 반짝이는 대화와 고만고만한 갈등,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낯설어지는 순간이다." - 11p
"2인분의 사랑이 기본값이라고 규정된 세계"에서 지난 5년간 '3인분의' 비독점적인 다자 간 연애를 추구한 홍승은 작가와 그의 애인인 지민, 우주는 의구심을 가득 담은 눈초리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때론 의구심에 그치지 않고, 소위 '비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것이라는 식의 무례한 오해나 단정,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찌 보면 이 관계를 오픈하고 낯선 개념을 설명하는 대신, 적당히 둘러대며 조용히 사는 것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렇지만 홍 작가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그러나 그들만의 특별한 연애와 동거 생활을 조심스레 담아냈다. "내 몫의 이야기만큼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개념이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렇다고 폴리아모리에 대한 '환상'만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신조차도 과거 연애를 할 때 집착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던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현재의 관계도 분명 흔들릴 때가 있고, "질투와 혼란과 불안과 우울감이 뒤섞인 '무엇'"이 밀려올 때도 있다고 토로한다. 이 책 속에서 세 사람은 지금의 상태가 완벽하다고, 우리의 관계엔 아무런 흠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불완전함을 제대로 직면하는 것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여느 건강한 관계가 그러하듯, 이들은 어긋나는 감정을 회피하고, 모른 채 하지 않는다. 대신, '노력'하고 '공부'하며 서로를 대면한다. 정말, "사랑과 연애는 낭만적 판타지가 아니라 함께하기 위한 끊임없는 협상과 노동이다."(14p)
'폴리아모리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이 책은 모노가미(배타적 독점적 일대일 연애관계), 혹은 기존의 언어로 규정될 수 없는 그 어떤 방식의 관계 맺기를 꿈꾸고 시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이 다소 낯설 뿐, 결국 관계의 평등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롭고도 익숙한 '연애의 기쁨과 슬픔'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지금껏 '정상'이라고 여겨온 모노가미, 이성애 연애 각본의 문제점도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랑의 형태를 뛰어넘어 관계의 평등성을 성취하기 위해, 사회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편견과 낙인을 거둬내고, 새로운 관계를 상상할 수 있어야만 개개인의 안전하고 온전한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은 개인적인 감정일지 몰라도, 그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사회의 품이 필요하"다.
"... 어쩌면 세상의 기준에서 나는 철저하게 불온한 연애와 가족 공동체를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와 이 관계가 불온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라면, 나는 불온한 존재 그대로 남아 그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을 해체하는 아름다움이고 싶다." - 서문 중에서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 - 홍승은 폴리아모리 에세이
홍승은 (지은이),
낮은산, 2020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오마타 나오히코 (지은이), 이수진 (옮긴이),
원더박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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