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위치한 초등학교 돌봄 교실에 한 학생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희훈
2004년 학교에 법령에도 없는 방과후 교실이 들어왔다. 맞벌이, 한부모, 빈곤 가정의 증가로 학교가 학생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여성의 경력단절 원인이 되는 육아휴직, 출산휴가, 자녀돌봄휴가, 유연 근무제와 같은 가정 돌봄 문화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할 곳이 학교 이외에 없었던 것이다.
교사들은 방과후 업무를 싫어했다. 강사를 채용하고, 관리하고, 학생을 모집하고, 수강료를 받고, 환불하고, 프로그램 만족도를 조사하는 모든 일을 교사가 했으니까. 한 학급의 담임교사로서 수업과 생활지도를 해야 함에도 방과후 업무에 시달리느라 아이들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아이들보다 업무를 우선시해야 하는 업무의 비교육성 때문에 모두들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전가의 보도인 '승진가산점' 제도를 앞세워 밀어붙였다. 빨리 승진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와 같은 교육부의 방과후 업무부과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내린 요구가 아니었다. 학부모의 민원에 떠밀려 내린 결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방과후 업무의 지자체 이관을 주장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사가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하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2010년 초등돌봄교실이 6200여 교실로 확대되었다. 6년이 지났어도 아이를 돌봐줄 곳이라고는 학교밖에 없었다. 마을이 학교가 아니라 학교가 마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을의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까.
수업이 끝난다. 반 아이들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지만 몇몇 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있다.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잠시 후 다른 교실의 돌봄 아동이 교실에 모여든다. 돌봄교실 초기에는 돌봄 전담사가 없어서 교사들이 돌봄 수업을 하고, 간식을 주고, 저녁을 챙기고, 돌봄 아동의 부모 혹은 가족과 연락하여 귀가도 시켰다.
이어서 아침 돌봄이 시작되었고, 저녁 돌봄으로 이어졌다. 하루 12시간 온종일 돌봄이 대통령 공약이 되었다. 필자의 학교 돌봄업무 담당 교사는 학급의 담임이자 연구부장 교사다. 반 아이들의 수업과 생활지도, 학부모 상담, 학교 전체 교육과정 업무에 더하여 돌봄 교사의 근무를 관리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돌봄 아동 중 아픈 아이는 없는지, 언제 귀가하는지 알아야 한다.
인간의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학급에 소홀해지거나, 돌봄업무에 소홀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니면 가정의 일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해야 했던 연구부장은 돌봄업무를 하느라 자기 아이를 까맣게 잊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한 교사는 울었다. 돌봄교실을 맡은 교사 수천 명의 가정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방치되어 가는 것이다.
돌봄업무 역시 방과후 업무처럼 기피 업무다. 학생에 더하여 돌봄 전담사까지 관리해야 하는 교사들은 부담이 크다. 학급 아동만 챙기는 교사보다 반 아이들을 챙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누구에게 갈까? 바로 반 아이들이다. 돌봄 업무를 담당하는 전국의 수많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기울여야 할 관심을 돌봄 전담사에게 나눠야 하니까. 이것이 교육의 가장 큰 손실 아닌가? 따라서 학부모는 교사들이 방과후나 돌봄 업무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학교가 아닌 지자체가 이들을 채용하고 관리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가장 아이들을 위한 일일 테니까.
현장교사의 의견을 중심으로 교육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야 민원에 대하여 교육적 대응이 가능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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