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시 대성당 내부 줄리아노가 쓰러지고(빨간 원) 로렌초는 성물 안치소(녹색원) 안으로 몸을 피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고 적들이 모두 성당을 떠나자 빠져나와 메디치 저택으로 피신했다
박기철
시청사 접수 작전
쿠데타가 성공하려면 지도자 제거와 함께 국가 주요 시설과 기능도 동시에 장악해야 한다. 조금 일찍 성당을 빠져나온 살비아티는 30여 명의 병력을 데리고 시청사가 있는 시뇨리아 광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야코포 역시 성당에서 나와 다른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시청사로 이동했다.
시청사인 팔라초 베키오에 도착한 살비아티는 병력을 1층에 놔두고 일부만 데리고 위로 올라갔다. 남은 병사들은 위병들을 제압한 후 올라올 예정이었다. 살비아티는 교황의 전갈을 가져왔다며 정부 수반인 페트루치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저런 말로 시간을 끌었지만 1층의 병력은 올라오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페트루치가 경비병을 불렀고 살비아티는 도망치려 했지만 곧 붙잡힌다.
그런데 1층의 병사들이 올라오지 않은 이유가 황당했다. 청사의 내부는 꽤 복잡해서 처음 오면 방향을 잃기 쉬웠다. 살비아티의 병사들도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문서 보관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에 들어온 병사가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은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스스로 갇혀 버린 꼴이 된 것이다.
한편 최대 100명에 달하는 야코포의 병력이 시뇨리아 광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이동 중에 '인민과 자유'를 외쳤다. 이는 독재에 맞서기를 촉구하는 전통적인 구호였다. 그래서 시민들이 동조하며 봉기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동조하는 시민들은 소수였고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시뇨리아 광장에서 혁명을 선포하고 시민들의 반메디치 봉기를 선동해야 했다. 하지만 살비아티가 청사 장악에 실패했기 때문에 시청사 위병들의 저항에 부딪힌다. 그리고 청사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이는 국가의 위급상황을 알리는 경보였다.
이 경보는 봉화처럼 계속 연결되어 겨우 두어 시간 만에 토스카나 전역으로 퍼지게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경보가 울린다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종소리를 들은 야코포는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황급히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쿠데타는 실패했다. 하지만 '피의 4월(April Blood)'로 불리게 될 광란의 살육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그리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시민들이 메디치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