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의 '모하노' 공간에서 만난 유훈정씨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덕산에는 양봉과 곶감 생산에 종사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보통의 다른 농촌들보다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분들도 많고, 젊은 분들도 많아요. 그래서인지 경제활동이 무척 활발하고, 상업적인 구조도 탄탄하게 이루어져 있고, 주민들간의 결속도 견고한 것 같아요. 덕산 특유의 분위기와 삶의 방식도 있고요.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면 한동안 적응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어쩌면 도시보다 더 각박하다고 느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특성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이 덕산 사람들에게는 큰 자부심이에요. 여긴 그만큼 정말 열심히, 성실히, 바쁘게 사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 에너지가 모이고, 지역의 변화를 만드는 일로 발산된다면 덕산이 산청의 중심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유훈정씨는 도시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7년 전 이곳으로 왔다. 산청에 와서도 학교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농사도 짓고, 꿀을 생산하기 위해 벌도 기른다.
"아는 분이 이 공간에서 학원을 운영하다가 그만둔다고 할 때 놀러 와봤어요. 피아노 학원, 공부방으로 쓰이던 곳인데 보나마나 또 학원이 될 것 같더라고요. 제가 학원을 운영해봤고 강사도 해봤는데 아이들에게 제일 불필요한 게 이런 학원식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덕산에 학원은 충분히 많으니까, 다른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코워킹 스페이스, 공유공간 같은 것이 유행한 적 있잖아요. 남편과 저의 사무실로도 사용하고, 누구에게나 열어놓는 공유공간으로 사용하려고 했어요."
2019년 5월, '모하노'라는 이름으로 공유공간의 문을 열었다. 모임이나 강좌가 열릴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는 물론, 프린터, 팩스, 컴퓨터 등의 사무집기와 문화활동과 모임을 위한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 책, 보드게임에 간단히 음료와 간식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까지. 사람들이 모이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이 웬만큼 다 갖춰져 있었다.
정말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모하노를 지켜보거나 찾아온 사람들이 함께 공간을 채워갔다. 얼마 후에는 '양심가게'라 불리는 셀프매점 형태의 부엌과 누구나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림터'가 마련됐다. 그때쯤이었을까.
'친' 청소년 공간 혹은 '찐' 청소년 공간
"열어뒀더니, 이 자리에 청소년들이 자리를 잡게 됐어요. 어른들은 카페에도 갈 수 있고, 소속된 단체의 사무실에 갈 수도 있잖아요. 관계성이 없으면 사실 이런 낯선 공간에 오기가 쉽지 않죠.
그런데 청소년들은 학교 끝나면 항상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카페 가는 것도, 편의점에 가는 것도 하루이틀이죠. 갈 데가 없어서 쉼터처럼 여기며 오는 친구들도 있고요. 제가 숲속새마을작은도서관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곳이 봉사활동 인증 기관이라 청소년들이 있었어요. 또 제가 학교에도 수업을 나갔으니까, 그렇게 소식을 들은 아이들이 찾아왔어요."
얼마든지 가르칠 능력이 있고, 심지어 학원을 운영해 본 경력도 있는데, 이곳이 학원이 되지 않길 바랐다고 하니, 아이들에게도 분명 평범한 선생님은 아니었을 것이다. '훈정쌤'과 좀 만나본 아이들이라면 이 공간에 좀 더 쉽게 마음을 열었을 것이다. 적어도 '어른들 눈치'보며 앉아 있어야 할 곳은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