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박홍규 옮김, 1999) 책 표지<오리엔탈리즘>(1978)은 1980년 불어로 번역된 이래로 약 30종의 언어로 전세계에 두루 알려진 고전이다.
김병하
한국에서는 유럽이 아닌 이웃 일본에 의해 더 지독한 식민정책으로 <오리엔탈리즘>이 이식됐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그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 우리에게 <오리엔탈리즘>의 폐해는 중층적이면서 심대하다. 왜 그런가? 일본은 <오리엔탈리즘> 중심부가 아닌 반주변부이면서 우리보다 불과 50년 전에 명치유신으로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추진한 끝에 한반도를 대륙침략 교두보로 삼고자 식민화했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드는 '민족 동화(同化) 수단'으로 강화됐기에 그 잔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심대하다. 게다가 미국의 극동정책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그 교두보로 삼아 그 불모로 한반도의 분단을 초래케 했다. 한국전쟁은 그 분단을 고착시키는 민족상잔의 비극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 분단 상황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자기 정체성 혼란을 야기하는 갈등요인으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자기 정체성 정립을 위한 엄중한 성찰을 요구한다. 사이드는 "우리가 여전히 <오리엔탈리즘>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지식인이 자칫 외적인 유혹에 의해 타락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필경 지금이 과거이상으로 지식의 유혹을 경계해야 할 시대라고 경고했다.
이영훈이 펴낸 '반일종족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유사성
이런 형국에서 2019년 7월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중심이 돼 <반일 종족주의>라는 희한한 제목의 책을 출간해 파장을 일으켰다. '반일 종족주의 신드롬'이라 할 만한 상황이 한국 극우 정치세력과 일본 집권세력을 비롯한 혐한집단 중심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최근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가 이에 대응해 집필한 <'반일 종족주의'의 오만과 거짓>(2020, 한겨레출판사)은 경제사 서술을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체계적으로 비판하고 있어 이목을 끈다.
저자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 정책 전문가로 두루 알려져 있지만, 본래 대학원에서 일제강점기 경제사를 전공하고 그 분야의 학위논문을 쓴 학자다. 게다가 이영훈 교수와 그는 안병직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기도 하다.
이영훈 교수는 안병직 사단에서 수제자라 불리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데, 2000년대 중반 역사 교과서 개정운동과 2016년 이후 이승만 학당을 근거지로 한 극우세력에 발을 담그지 않았더라면 한국경제사 분야에서 발군의 자리를 굳혔을 거라고 전 교수는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