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70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민화협, 개성공단기업비대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여성단체연합 등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제안 기자회견이 열렸다.
권우성
"한국전쟁 때 죽은 건 군인만이 아니다. 일반인 100만 명이 죽었다. 한 사람당 3명의 가족이 있었다고 셈하면 300만 명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한을 품고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나도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았을 거다. 가슴 절절히 전쟁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외치고 싶다. 너무나도 뼈저리게 전쟁을 겪었다. 내 후손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랄 뿐이다."
평화를 바라며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은 각자의 체험을 통해 '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밝혔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은 전술손씨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경험을 전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호극 해군소령. 1947∼48년경 해안경비대 진해특설기지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 전, 해상의용군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연행당했다. 남북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 해상의용군이 반란을 도모했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씨는 "전쟁으로 좌우 이념이 극대화되자 군인들은 반란혐의를 받은 아버지를 마산 구산면 앞의 괭이바다에 수장했다, 살아있는 채로 수장됐다는 조사보고서를 읽고 하염없이 울었다"라고 울먹이며 "더 이상 전쟁은 안된다, 휴전이 아닌 종전으로 전쟁의 위험을 끝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는 평화의 미래를 말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당연했던 평양·개성·신의주로 향하는 열차를 다음 세대가 당연하게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다. 문 신부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해방이 됐고, 중학생 때 휴전을 겪었다"면서 "나는 북으로 여행가는 꿈은 꿀 수 없었는데,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익산에서 열차를 타고 개성·신의주·평양·상해를 갔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귀가 아프도록 아버지의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살았는데 내 나이 80이 넘도록 아직 한 번도 북으로 가는 열차를 타지 못했다"면서 "우리 손주·손녀는, 우리 젊은이들은 평화열차를 타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 규모의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에서 활동하는 강미 평택평화센터 소장은 주한미군의 주둔으로 평택 시민들이 겪는 괴로움을 토로했다. 강 소장은 "평택에서 외국군이 주둔한 지 70년이 됐다, 70년간 전쟁을 대비한 것"이라면서 "미군의 여러 군사훈련 때문에 평택 시민들은 소음과 오염을 겪고 생화학실험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2019년 주한미군의 생화학실험이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와 부산항 8부두 등 주거밀집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미국 국방부가 발행한 '2019 회계연도 생화학방어 프로그램 예산 평가서'에 따르면, 생화학실험 관련 예산이 주한미군에 다시 배정됐다.
강 소장은 "미군의 생화학실험(생물무기 실험)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면서 "전쟁이 아니었다면, 분단이 아니었다면 겪을 필요가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
전쟁을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