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 예고편 일부. 대림동 거리가 그대로 노출된다.
무비락
- 1심에서는 패소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나?
"1심 판결의 요지는 영화 <청년경찰>이 '표현의 자유 범위'에 포함되는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사실과 다른 부분 일부 있고, 원고들에게 불쾌감을 줬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영화 제작이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불법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이 실제 대림동이 저런 모습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식하지 않겠냐는 것, 원고들이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영화 때문인지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청구 기각의 근거였다.
아쉬운 점이 있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잘못되거나 위법한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국에는 차별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물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지금 있는 법 테두리 내에서 판단함으로써 생기는 근본적인 한계로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재판부가 원고의 입장이나 소송을 제기한 경위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 2심은 1심과 어떻게 달라졌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소송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다. 원고가 왜 이 소송을 제기한 것일까, 원고에게 이 소송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고민을 한 것이다. 그래서 원고에겐 손해배상이 전부는 아니니 금전적인 손해배상은 포기하게 하고, 대신 피고가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준 부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화해조정을 권고한 것이다. 영화사도 그런 재판부의 취지를 이해해서 법원의 결정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적이고 중립적인 법원이 영화 제작사에 사과나 재발방지 약속을 권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고와 피고의 항변을 듣고 서로 조정해서 화해를 할 수 있는 절차가 있는 것을 법원이 잘 고려했다.
특히 사과뿐만 아니라 영화를 제작할 때 혐오 문제에 대해서 면밀하게 검토하라는 재발방지 약속까지 권고를 한 것은 의미가 있다. 혐오와 차별에 대해서 법원이 공식적으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긴 것이다."
- 그동안 법원이 콘텐츠 내 혐오표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없었나?
"영화에 나오는 표현을 규제하거나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인정한 사례가 많지 않다.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도 특정 개인에 대한 묘사일 뿐, 이렇게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이나 부정적 묘사에 대해서 책임을 인정한 사실은 없었다.
조선족 동포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종교가 다른 외국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혐오가 개그프로그램이나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어 왔다.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선례가 없었다. 그런데 법원의 이번 결정을 통해서 당사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선택권'이 생긴 셈이다. 또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들이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심사숙고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 영화사인 무비락 측이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어떤 식으로 진행했나?
"사과문을 '공문'의 형태로 보내왔다. 이 영화를 통해서 의도하지 않게 피해를 끼친 원고를 비롯한 조선족 동포에게 사과한다며, 영화 제작하는 데 있어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강제성은 없어 보인다.
"혹자는 이런 형태의 사과가 부족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원고들은 피고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다 전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물론 영화사의 잘못은 크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이런 주제(외국인 혐오)를 무비판적으로 다뤄온 부분도 있지 않나.
이번 법원의 결정이 영화 제작사나 방송사들에게 폭넓게 이해되고, 그들이 성찰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수준의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을 얻어내는 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이번 법원의 결정 취지에 따라서 제도적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국회 입법을 통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21대 국회가 이번 법원 결정에 대해 고민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