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오직 사랑으로만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Pixabay
서론이 길었다. 정작 하고 싶은 건 '심수봉'이었는데 너무 에둘러 왔다. 하지만 그 역시 트로트 가수다. 가수도 그냥저냥 한 가수가 아니다. 그만의 일가를 이룬 독보적인 트로트 대가다. 스무 살 대학생 때 트로트로 가요제에 나와 상을 탔고, 이후 40여 년 한 길을 걸어온 분이다. 그가 불러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얘기를 하려는 거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영 연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대표곡 중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있다. 그가 부른 유일한 번안곡이다. 원래는 북유럽 라트바이 공화국의 역사적 고난을 그린 노래라 한다. 심수봉은 그것을 완전히 달리 해석했다. 심수봉 식 사랑의 세레나데로 바꾸어 놓았다. 태생은 그게 아니었지만 심수봉이 바꾸고 노래를 부르니 트로트처럼 들렸다. 그것도 참 애절하고 구슬픈. 배경을 모르고 듣는 이들은 깜빡 속을 만 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 백만 송이 장미 가사 일부
노래 속에서 심수봉은 어느 별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된다. 그에게는 이곳 삭막한 지구를 '사랑'으로 가득 채우라는 범상치 않은 사명이 주어졌다. 그것을 완수했다는 징표는 백만 송이 장미였다.
그 많은 장미는 오직 사랑으로만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지구인들이 설혹 자신을 박대하고 멸시해도 그들을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야 꽃은 피고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건 그러니까 아가페적 사랑이다. 미련스러울만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다. 내어주기만 할 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다.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한없이 슬픈 비극의 사랑이다. 받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주는 사람은 아프다. 그리 아파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무나 그리 하지는 못한다. 흉내조차 어렵다. 인간을 넘어선 경지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런 시적인 가사를 심수봉 특유의 애절한 음색으로 불렀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손수건을 찾았을 터다. 새삼 그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주신 분도 끝내는 그러셨다. 애써 숨기려 했지만 그 분의 목소리는 가녀리게 떨렸다. 함께 듣던 다른 분들도 그런 것 같았다. 하마터면 나도 그럴 뻔 했다. 용케 참았다. 분위기는 자못 숙연해졌다. 마지막 교리수업 시간에서였다.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교재는 최후의 심판을 '인간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교리 선생님께선 '느닷없이' 이 노래를 들려주셨다. '말하자면 이런 사랑이지요'라는 소개 멘트와 함께였다. 교리 수업 중에 듣는 백만 송이 장미는 묘했다. 울림이 크고 깊었다. 가사가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최후의 심판이라 하면 의당 불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분노한 하느님께서 교만하고 배은망덕한 인간을 시뻘건 불로 단죄하는 그런 장면 말이다. 그런데 같은 붉은 색이지만 하느님의 불은 그건 모든 걸 태워 없애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기로 덮고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미의 불꽃이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결국 사랑이었다. 우릴 멸하자는 게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감화시켜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이 하느님의 깊은 뜻이었던 거다.
심수봉은 원래 불교를 믿었지만 개신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기독교로 귀의 할 때 그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정황으로 미루어 아마 심수봉은 그런 주님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위대한 사랑을 향한 찬양의 심정을 담은 노래로 여겨졌다. 종교는 달랐지만 그 노래를 들려주신 우리 교리 선생님도 어쩌면 같은 마음이었을 터다. 하느님의 자녀로써 거듭 태어날 우리에게 그 크신 사랑을 본받고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셨던 듯했다.
6월 마지막 주일에 세례를 받게 됐다. 그야말로 '드디어'다. 숱한 우여와 곡절의 끝이다. 당연히 기쁘고 감격스러워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걱정이 더 앞선다.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는 있는지 해서다.
교리 선생님께서 심수봉의 노래를 들려주신 후엔 더 그렇다. 하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진 않다. 일단 받아들여야 할 터다. 그런 연후에 시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벅찬 가슴으로, 경건한 자세로 그 날을 맞을 일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공유하기
교리수업 마지막 장식한 노래 '백만 송이 장미'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