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신공항 예정 부지통합신공항 활주로 예정지 조감도에 따르면 도암1리는 비행기 이륙방향의 맨 끝 지점에 해당한다. 공항이 건설되면 사진 속 마을과 야산도 활주로로 바뀌게 된다.
이민호
부산에 거주하는 김형욱(54·제조업)씨는 의성군의 한 이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김씨의 어머니가 신청한 거소투표 용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거소자 투표는 해당 지역에 주민등록이 돼 있는 당사자가 신청해야 하는데, 김씨는 신청한 적이 없는 어머니의 투표용지를 배달받았다고 한다. 김씨의 어머니는 의성군 금성면에 거주지가 있고, 주소도 의성에 있으나 몸이 좋지 않아 4년 전부터 아들 집에서 머물고 있었다.
의성군 선관위는 지난 1월 21일 이장 B씨와 C씨를 거소투표신고서 허위 작성 혐의로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에 고발했다. 두 사람은 거소투표 신고 사유에 해당하지 않거나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주민 12명의 거소투표신고서를 허위로 작성 신고한 혐의를 받았다. 김씨 모친의 사례도 누군가에 의해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거소투표신고서가 작성된 사례로 의심할 수 있다.
의성·군위군 양쪽 모두 이번 주민투표에서 이례적으로 많은 거소투표 신고를 받았다. 취재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투표 결과에 따르면 거소투표자 신고인은 5216명이었으며 그 가운데 실제 투표수는 4576장이었다. 신고인 수는 투표인 수(4만 8434명) 대비 10.7%에 달한다. 2018년 제7대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205명,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156명에 비하면 약 25~33배까지 늘어난 수치다.
거소투표 미발송 건수도 217건에 달했다. '미발송'은 허위로 신고했거나, 투표자 본인 의사에 따라 신청되지 않은 게 밝혀져 해당 선관위에서 거소투표용지를 발송하지 않은 경우다. 군위군의 경우도 거소투표 신고인 수가 1288명으로 투표인 수(2만2180명) 대비 5.81%였다. 거소투표가 미심쩍은 경위로 대량 신청되고, 찬성률 높이기에 활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영기 의성군 선거관리위원회 주무관(40)은 "본인이 신고를 안 했는데 (거소투표 신고 인명부에) 오를 수는 없다"며 "기간 시설에 계신 분은 출장 조사를 하고, 필체가 비슷하거나 그런 경우 전화로 연락을 드린다. 이번에도 저희뿐만 아니라 지원 인력을 받아서 연락을 많이 돌렸는데, 전화를 안 받고 전화번호를 안 쓴 경우 저희도 연락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한편 정윤재 의성군 주무관(총무과)은 "관외 거주자들이 사전투표제도로 부재자신고 없이 전국에서 선거가 가능한 대선이나 지방선거와 달리, 주민투표는 거소투표로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청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누구를 위한 주민 투표였나
2016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대구 K-2 군 공항과 대구국제공항의 이전이 결정된 후 국방부는 예비이전후보지를 찾으면서 지자체와 협의에 나섰다. 김주수 의성군수가 국방부 군공항이전 사업단의 예비후보지 조사용역 결과를 들은 뒤 군 의회, 이장협의회 회장단, 농업인 단체 등과 잇달아 간담회를 열었을 때 농업인 단체 대표 20여 명 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이 반대했다.
신광진 회장은 "(공항이 건설되면) 의성은 농업 군으로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니 주민 의견을 반영하자고 주장했다"며 "김 군수는 여러 의견을 듣겠다면서도 자치단체장인 자신의 판단으로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라고 회고했다. 김 군수는 결국 의견서를 국방부에 제출했고, 국방부는 예비 이전 후보지를 발표했다.
김주수 군수는 민선 7기(2018년 7월 2일~2022년 6월 30일) 공약 가운데 신성장 동력 사업의 첫 번째로 공항 유치 및 주변지역 개발사업을 꼽았다. 이후 의성군은 통합신공항의성군유치위원회를 만들고 군·권역·읍·면·리 마다 422개 위원회를 꾸려 홍보 활동에 나섰다. 취재팀이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의성군은 <대구신문>과 <경북도민일보> 등 9개 매체 지면 광고에 4290만 원을 쓰기도 했다.
의성군의 신공항 유치 홍보와 투표 운동은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군청이 주도하는 하향식으로 이뤄졌다. 반대 단체와 활동가들은 여러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허울뿐인 반대 단체가 난립하면서 실질적 반대 의사를 가진 주민들은 주민투표 제도를 통한 공식 반대 토론회에 나가거나 공보를 낼 기회도 잃었다. 이 때문에 의성의 미래를 바꾸는 대규모 사업 유치에 대한 정보를 주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검증할 기회를 놓쳤다.
주민의 의사가 왜곡되면서 지역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주민투표법 등 관련 제도 보완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김원율 주무관은 "공직선거법은 출석 요구권이나 자료 제출권으로 (조사 대상자를) 강제할 수 있는데, 주민투표법은 아예 그런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임의 동행, 임의 조사를 해야 되는데, 조사권이 (공직선거법에 비해)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며 "실제 주민투표 때도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공직선거법처럼 선관위의 출석 요구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강제성을 주민투표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주민투표를 관리하는 선관위 위원 및 직원에게 공직선거법에 준하는 조사권 등 실효성 있는 단속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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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에 세 명이 투표 안 했다고 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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