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사지 십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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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의 문화재는 그 나라 문화의 상징과도 같다. 말하자면 고유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재가 훼손되거나 분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은 여러 기간 압제와 수탈을 겪었다. 경주 다보탑의 사라진 '사자상'이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등 약탈당한 문화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문화로 조선을 누르고자 문화재 복원 사업을 실행했다. 문화재 복원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보여주면 조선이 굴복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조선의 문화재를 탐내기 시작했고, 같은 일본인끼리 조선 문화재 선점을 위한 치열한 경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일본은 동산문화재 뿐만 아니라, 탑과 같은 건축문화재까지 무참하게 약탈하려 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국보 제86호 '경천사지 십층석탑'도 일제의 수탈로 빼앗길 위기에 놓였던 문화재다.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경기도 개풍군 부소산의 경천사에 있었다. 1907년 조선을 방문한 일본 궁내성 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고종 황제가 경천사탑을 하사했다"는 거짓말로 탑을 해체하여 도쿄로 밀반출했다.
석탑은 미국 감리교회 선교사 호머 헐버트와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 등의 노력으로 무사히 조선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나카가 석탑을 약탈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선교사 헐버트는 일본의 영자 신문에 석탑 사건을 보도하며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 역시 <코리아 데일리 뉴스>에 다나카의 만행을 실어 석탑 반환 여론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비난의 여론이 강해지자 다나카는 결국 1918년 탑을 조선에 반환했다. 탑은 경천사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쉽게도 경복궁 회랑에 줄곧 방치되었다가 2005년쯤 풍화와 산성비 등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