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대상화 되는 교육이 아닌 함께 참여하고,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방향의 교육이 필요함을 이야기해 준 김현정 씨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김현정씨는 또래보다 일찍 아르바이트 노동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의 동의를 얻어 다양한 곳에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경험에서부터 출발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확대되어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5월 청소년 노동인권 토크쇼에도 나갔다. 최근 인천교육청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고 청소년 문제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현정씨가 경험한 세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고깃집 알바 경험을 떠올렸다. 온종일 고기 굽는 연기를 맡으면서 두통이 너무 심해진 것이다. 실제 국제암연구소도 음식 연기를 잠재적 인체 발암물질로 규정할 정도다. 신체적 건강 악화는 자연스레 정신적 건강까지 이어졌다.
"저는 흡연을 안 해요. 그런데 흡연하는 사람과 똑같이 건강이 안 좋아진 느낌을 받았어요. 고기를 구워주는 데서 일하니 연기를 많이 마신 거죠. 실제 이런 연기는 담배 연기만큼 나쁘잖아요. 부모님이 우스갯소리로 돈 번 거 다 병원비로 나가겠네 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어요. 그리고 밤낮이 바뀌니깐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데 그러기도 힘들었죠.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기 어렵더라구요. 학교 다니면서 할 게 너무 많은데, 알바가 밤에 끝나면 밤을 새워서 해야 하고 그게 반복되니깐 건강이 나빠지고요. 돈을 벌어도 쓸 시간이 없었어요. 친구들과 놀 시간조차 없었죠. 그래서 너무 우울했어요. 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고 할까요. 이후에 밤에 편의점 알바를 했을 때는 여성이다 보니 어떤 남성이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느꼈죠.
작년 토크쇼에서도 얘기했는데 키즈카페 알바하면서 한 어머님에게 뺨을 맞은 적도 있어요. 당시 어린 마음에 쉽지 않아서 참고 견뎠고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육체적인 것보다요."
청소년 노동자들이 '견뎌야' 하는 시간
산재 경험,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이어 현정씨와 건희씨에게 일을 하면서 겪은 부당한 경험에 대해 도움을 받아보거나 요청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둘 다 고개를 저었다. 힘들게 사업주에게 이야기를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음을 받은 친구는 손에 꼽고 다 참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돈을 받으려면 버티는 수밖에 없지라는 생각밖에 없죠. 그래도 정보가 많은 친구라면 인터넷에서 찾아서 온라인 상담을 받거나 했던 것 같아요. 딱히 도움을 받는 친구는 본 적이 없어요.
그나마 성인이 되고서는 좀 당당해졌다고 할까요?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리고 대인 관계가 넓어지니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는 정보가 늘어나는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넓어봤자 학교 친구들인데, 지금은 활동이 많아지니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정보도 늘어난 거죠."(김현정)
"문제가 있어도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는데 30대 초중반 남성 세 명이 들어왔어요. 담배 한 보루 달라고 했다가 갑자기 한 갑만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 별로 안 좋아져서 표정을 찡그리니 그 사람이 '너 지금 썩소지었냐'라고 하면서 막 욕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카드를 던지면서 계산하라고 해요.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그냥 넘겼어요. 편의점이 외진 데 있어 무섭기도 하고요. 화가 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어요. 사장에게 얘기했지만 별 얘기 안 하더라구요. 웬만하면 웃어주라고만 하고요. 사실 떼인 돈은 노동법을 알면 신고해서 받으면 되지만, 그 외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은 전혀 손 쓸 도리가 없죠."(조건희)
청소년유니온에서 2019년 조사한 청소년 감정노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터에서 고객에 의한 성희롱, 표정 관리·화장 및 복장 강요, 폭언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대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직에 많은 청소년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나이에 대한 위계로 설정되는 고객과의, 사업주와의 권력 관계는 더욱 문제를 증폭시킨다.
이에 반해 고객응대 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사나 동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냐는 질문에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69명(27.39%)에 달했다. 이 조사의 참여자들도 대체로 참는 것 말고는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답했다.
개인이 견디고 감내해야 하는 시간과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쉽지 않다. 변화의 경험을 체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악한 조건과 환경, 무권리의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쉽다. 이는 법제도적으로 보호망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실효성을 갖추기 어렵게 한다.
또한 청소년 시절의 노동 경험이 이후에도 이어져 노동자 스스로 권리의 주체임을 인식하기 쉽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청소년 노동 문제를 우리 사회 전체의 노동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에선 안전사고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위협하는 위험 요인이 다양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도 중요하다. 그래야 권리의 확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하자
청소년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그리고 일터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학교에서 마련된 노동안전보건 관련 교육은 미비한 수준이다. 사실 '노동'은 없고 안전 중심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마저도 하지 않기도 한다.
학교뿐만 아니라 일터도 심각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보건교육을 의무화하였지만 청소년이 많이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은 사각지대다. 이뤄진다 하더라도 효과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집체교육, 온라인 교육이 상당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4년 청소년 아르바이트 실태조사 및 정책방안 연구에 따르면 교육시간 없이 간단한 주의사항만 전달받는 경우가 54.6%, 교육이나 언급 없음이 14.3%, 따로 마련된 교육시간에 설명이 13.6%, 동료가 중간에 주의사항을 알려줌이 12.6%,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문만 받는 경우가 4.8%, 기타 0.1%로 확인됐다.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실제 사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교육청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이지만, 대부분 근로기준법 안내가 중심이고 노동안전보건을 주제로 하는 교육은 드물다. 실제 건희씨는 노동인권교육을 받지 못했고, 현정씨는 고등학교 창의적 체험 시간에 교육을 받긴 했지만 교육보다 '홍보' 느낌이 강했다고 했다. 이런 부당한 일이 있으면 신고하고, 번호 알려주는 정도였다.
"수업을 듣고 작성한 일지를 제가 걷으면서 읽어봤는데 다들 기억에 남는 게 없다고 했어요. 청소년 시기는 '약자의 시기'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실제 궁금한 건 정말 그 일을 당했을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거든요. 실제 교육을 들을 때 '근로계약서 써야 돼요, 임금체불하면 안돼요'라고는 하는데 어떻게 계약서를 써야 하는지, 임금체불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알려주더라구요.
시간도 2시간이에요. 강사분이 파워포인트 띄우고 말하고, 문화상품권 걸고 퀴즈 맞히기 하는 식이에요. 아예 도움이 안 됐다고 할 순 없지만 아쉬움이 많죠."
청소년 노동의 현실을 마주한 자리에서 학교에서 또는 일터에서 청소년과 노동, 노동안전보건이 어떻게 만나야 할지 이들에게 물었다. 듣는 객체가 아닌 참여하는 주체로, 동료와의 연대의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안했다.
"저는 실제로 학생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이 되면 좋겠어요. 조를 짜서 학생들끼리 주제에 대해 작성해보는 것도 재미있고 오래 기억에 남거든요. 실제 뭔가 찾아보고 얘기하라고 하는 게 더 도움도 되고요. 한편에선 노동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생님들도 더 많은 교육을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선생님도 많아요. 저도 이런 활동에 관심 가진 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들이 굉장히 드물어요.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중요하지만 선생님들도 경험이 쌓인다면 변화가 생길 것 같아요."(김현정)
"청소년뿐 아니겠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은 큰 고립감을 느껴요. 깊은 친구 관계가 없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에요. 다 경쟁상대죠. 내가 쟤보다 대학을 못 가면 어쩌지라는 생각으로 공부하거든요. 청년들도 자신의 고통을 사회적으로 공감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조건에서 교육을 들을 때 엄청 이질감이 들 수도 있고,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청소년들이 이어질 수 있는, 공감받을 수 있는 경험을 만들 수 있는 교육이 되면 좋겠어요."(조건희)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을 보며 자기가 생각났다는 건희씨, 최근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자살 사건을 듣고 우리 사회의 권력 관계, 갑질 문화에 대해 다시 분노를 느꼈다는 현정씨. 두 사람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변화의 시작은 바로 교육 현장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크게 울려 퍼졌다.
[참고자료]
- "산업재해 알 필요없어" 청소년 노동권 토론회서 쫓겨난 학생들, 2019.5.30, 민중의 소리
- [단독] 10대 '티슈 노동자' 밑바닥 청춘, 2019.5.28, 서울신문
- '청소년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청소년유니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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