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심광장 중앙에 있는 1928년에 세워진 터키 공화국 수립 기념비.
차노휘
터키가 한국을 잇는 하늘 길을 막았던 3월 1일, 나는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귀국한 2주 뒤 이스탄불에서 묵었던 아파트 호스트가 연락을 해왔다. 내 안부를 묻고 난 그가 에르도안(현재 대통령 이름)이 모든 바와 클럽을 강제로 문을 닫게 해서 실직자가 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미술 사학을 전공했고 이스탄불의 교통, 상업, 관광의 중심지인 탁심광장 근처 바에서 바텐더로 근무했다. 종교 색채가 강한 그곳에서 '자유'를 추구했던 그는 무교였다.
나는 '터키'와 '코로나'를 키워드로 재빨리 검색을 했다. 그곳을 떠날 때만도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다. 귀국 일주일 전 한국은 대구 신천지를 중심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중국인들을 입국 금지시킨 이국땅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눅 든 나는 외출을 자제해야 했다. 하지만 불과 2주 만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나는 궁금했다. 청정지역을 감염시킨 첫 터키 확진자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가. 다행하게도 동양인은 아니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자국민이었다. "그런데 너가 실직당한 것은 안 된 일이지만 에르도안 정책에는 찬성. 너네 나라는 이제 시작일 뿐이야." "너 말이 맞긴 한데, 클럽과 바만 금지시키면 뭣하니? 모스크는 금요일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데?" 그의 말이 맞았다. 터키는 무섭게 확진자가 늘었다. 현재, 감염자 16만 명에 사망자는 5천 명에 이르고 있다. 한때 이스탄불은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선거를 무사히 치렀고 K방역은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코로나바이러스19를 대처하는 모범국으로 부상했다. 수준 높은 국민의식과 실천뿐만 아니라 훌륭한 리더를 둔 덕분이기도 하다. 가끔 그가 연락을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을 자랑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알기를 바랄 뿐이었다.
종교지도자였던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