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등급별 평균 월세를 그래프로 시각화했다. 안전지수 상 등급을 받은 원룸들과 하 등급을 받은 원룸들의 평균 월세 격차는 19만7000원으로 나왔다. 월세 평균값은 전세를 제외하고 66곳만 따져 계산했다.
서현정
"스프링클러? 그런 거 있는 집 가려면 50만 원은 줘야지."
지난 2월 13일 서울 신림역 인근의 B 부동산. 이곳에서 30년간 중개업을 했다는 공인중개사 강모(68)씨는 스프링클러라는 말에 손을 내저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인 원룸을 구하는 사람에겐 무리란 의미였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 10명 중 6명은 월세로 산다. 청년들이 살 곳을 마련할 때 가장 흔히 찾는 주거형태가 원룸이지만 지친 몸을 누이고 세간살이를 부려놓을 한 뼘 공간에 안전이라는 옵션을 얹기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했다.
취재팀은 전문가와 함께 안전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2월 3일부터 3월 6일까지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는 신림동을 비롯해 대학가 원룸 76곳의 안전 설비 실태를 확인했다. 이 중 37곳은 취재팀이 직접 살펴봤고, 39곳은 거주하는 청년들이 직접 안전 정도를 따져봤다.
안전리스트 작성을 위해 소방청에서 관리하는 다중이용업소법 시행규칙 중 '안전시설 등 세부 점검표'와 경찰청에서 발표한 '범죄예방 환경디자인(CPTED) 적용한 원룸 방범 인증제 추진계획'의 평가항목을 참고했다.
안전리스트는 화재예방과 범죄예방 부문으로 나뉘어 총 15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화재예방 부문에서는 스프링클러, 소화기, 단독경보형 감지기 등을, 범죄예방 부문에서는 CCTV, 방범창, 조명 등 안전시설의 유무를 점검하도록 했다. 이 리스트의 화재 영역은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범죄 영역은 박준휘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검수했다.
안전한 방 월세 19만 원 더 비싸… 안전지수 만점은 1곳뿐
살펴본 원룸 76곳 중 안전 설비를 모두 갖춘 방은 겨우 한 곳에 불과했다. 전체 15개 평가항목 중 안전시설이 있거나 안전을 해치는 시설이 없다고 답한 항목의 개수를 세고 그 비율을 따져 최종적으로 각 원룸의 안전지수를 계산했다.
조사 대상 원룸의 평균 안전지수는 64점이었다. 안전지수에 따라 80점 이상은 상, 40점 이상~80점 미만은 중, 40점 미만은 하로 안전등급을 나누어 살펴봤다. 전체 76개 원룸의 57.8%(44곳)가 중간 등급의 안전도를 보였고 상 등급의 원룸은 전체의 30.2%(23곳)였다. 안전 낙제점인 하 등급을 받은 곳도 9개(12%)나 됐는데 이 중 최하점(13.33)을 받은 원룸의 경우 필수 안전 설비 15개 가운데 13개가 없었다.
값싼 방일수록 안전등급은 낮았다. 안전지수 상 등급의 평균 월세는 62만7000원, 중 등급은 47만9000원, 하 등급은 43만 원이었다. 형사정책연구원 박준휘 연구위원은 "유전무피 무전유피(有錢無被 無錢有被) 현상"이라고 평했다. 소득이 낮을수록 사건 사고와 그에 따른 피해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 연구위원은 "안전은 공공재인데 소득에 따라 안전수준이 달라지고 있다. 안전이 일종의 사적 재화가 된 셈이다"라고 말했다.
취재팀은 지난 2월 3일부터 2월 15일까지 2주간 서울 신림역 근방에 있는 원룸 37개를 직접 돌아다니며 화재 및 범죄와 관련한 안전 실태를 확인했다. 신림동이 속한 서울시 관악구는 2030세대 인구 비중이 여성 37.7%, 남성 40.2%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