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그림
숲노래/최종규
정혜는 순자를 자기네 집 뒷간에 밀어넣고 말했어.
"여기서 이 달걀을 다 먹어.
그럼 밤사이에 병이 뚝 떨어질 거야."
동무들은 달걀 먹이려다 괜히 애먹이면 어쩌나 싶었지. (29쪽)
어쩌다 보니 순자란 아이는 곁에 피붙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에 덩그러니 혼자입니다. 말을 섞을 사람이 없고, 말을 걸 사람이 없습니다. 때 되어 밥을 먹으라느니, 심부름을 하라느니, 몸을 씻으라느니, 옷을 빨라느니, 이부자리를 깔라느리, 이불을 개라느니, 마당에 비질을 하라느니... 잔소리도 군소리도 살림소리도 사랑소리도 노랫소리도 들려줄 사람이 없습니다.
말을 걸어올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나서서 말을 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나날을 보내는 순자는 마음에 한 가지 생각을 심어요.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처럼 사느니, 삶을 마감하고 죽음으로 가는 길이 낫다고 여깁니다.
이때에 마을 또래는 순자한테 살그마니 다가가서 말을 섞어요. '하루거리'에 걸리지 않았나 걱정하면서, 또 순자하고 놀고 싶은 마음에, 또 스스로 배우고 살림하는 마을이란 터전을 얼결에 복닥복닥 가꾼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