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246호인 경주시 교동 재매정. 신라의 화랑이었던 김유신 관련 유적이다.
경북매일 자료사진
'풍류도'라는 철학·종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수련했던 신라의 화랑들. 우리에겐 그들을 바라보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문학작품과 영화에서 묘사되는 화랑은 그 유형이 비슷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신라가 멈춤 없이 발전하고 인근 국가들과의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청년 리더인 화랑이 존재한다. 그들은 왕을 충성으로 섬기는 사군이충(事君以忠)의 정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잊지 않았고, 전쟁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는 임전무퇴(臨戰無退)의 기개로 무장한 강위력한 조직의 구성원들이었다."
지난 시절. 정통성과 합법성이 부족했던 독재 정권은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효과적으로 고취시킬 필요성이 있었고, 황산벌 전투(660년)의 불리한 여건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전세(戰勢)를 뒤집은 신라의 화랑 관창(官昌)과 반굴(盤屈) 등을 '10대 애국 소년'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다. 몇몇 작품을 제외하자면 20세기 중후반 한국 소설에 등장하는 화랑의 모습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이쯤에서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신라의 청년 지도자들은 모두 '전투하는 기계(?)'에 불과했을까? 화랑이 '용맹'과 '애국심'만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화랑을 지도했던 이념인 풍류도의 소프트웨어는 대체 뭘까?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발행한 <신라의 학문과 교육·과학·기술>은 이런 의문에 답한다. 책은 이렇게 쓰고 있다.
문무(文武)를 겸전(兼全)해야 진정한 화랑
"화랑도의 교육 방법, 수련 방법은 철저하게 조화적·중용적 인간상에 맞추어졌다. 삼국 정립기에 창설되고 조직화했던 만큼 화랑도가 무(武)의 수련에 치중하였을 법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에 못지않게 문(文)을 중시하여 문무겸전한 인재를 길러냈다. 또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함께 건전하고, 조화 있고, 균형 있게 발전시켜 나가야 된다는 정신을 이 땅에 뿌리 내렸다."
이 설명처럼 화랑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용맹한 애국심' 하나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정신적 성숙과 학문에 매진하는 태도 역시 화랑이라면 가져야 할 기본이었다. 화랑의 생활양식과 교육 방법을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아래와 같이 기록했다.
"도의로써 서로 연마하기도 하고, 가악(歌樂)으로써 서로 즐기기도 하며, 산수(山水)를 좋아하여 아주 멀어도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를 보고 그들의 사정(邪正·그릇된 것과 올바른 것)을 알아서 그 가운데 좋은 사람을 조정에 천거하였다."
김부식의 진술처럼 화랑의 이념적 근간이었던 풍류도는 육체와 정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인간을 지향하고 있었다. '도의로써 연마한다'는 것이 이성적 영역의 학습이라면, '가악으로써 즐기며, 산수를 좋아하는' 것은 감성적 범주에 해당된다.
이 둘의 조화와 균형이 신라의 화랑들을 '점잖고 조숙하며 피 뜨거운 청년'으로 만들었던 게 아닐까? 앞서 말한 <신라의 학문과 교육·과학·기술>은 이런 가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서술을 통해서다.
"화랑들은 나라를 위해 전장에 나가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버리면서도, 인간 본래의 정감과 순수성을 잘 갈고 닦았기 때문에 백성과 고락을 함께 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화랑들은 자연환경이 빼어난 곳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수련하고, 가악으로써 정감을 발휘했던 것이다. 국토를 순례하면서 애국심을 높이고 개인의 정감을 문학과 예술로 승화시켰다."
풍류도는 오늘날 '한류'의 뿌리?
풍류도, 풍월도, 화랑도를 주제로 한 논문 여러 편을 검토하면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풍류도를 지도 이념으로 성장했던 화랑을 '흥이 넘치고 멋을 알았던 신라 청년들'로 묘사하고 있었다.
이는 '풍류'라는 단어를 '신명' 혹은, '신바람'이라 바꿔 사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는 학계의 일부 주장과도 맞물려 있다. 이처럼 신라의 화랑도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탁월한 줄타기'를 보여준 선진적인 조직체였다.
풍류도와 화랑도의 운영 체계를 살피다가 매우 흥미로운 논문 하나를 찾아냈다. 철학자 권상우가 2007년 <동서철학연구>에 발표한 <한류의 정체성과 풍류정신>이다. 권상우는 풍류사상의 특징을 멋, 한, 삶으로 파악했고 이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부연한다.
"풍류의 '멋'에는 외형적인 멋과 내면적인 멋이 있다. 외형적인 멋은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현상이며, 내면적인 멋은 창의적이고 역동적이면서 개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은 여러 개성들을 어우르는 특징이 있음을 설명한다. 또, 풍류에서의 '삶'이란 내세적이고 초월적인 가치관이기 보다는 현실의 생활세계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권상우는 1990년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에서 시작돼 현재는 미국과 유럽까지 전파된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 현상, 즉 '한류'의 뿌리를 '풍류정신(풍류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 <한류의 정체성과 풍류정신>은 한류가 발생할 수 있었던 요인을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기법, 열정, 활력, 다양성, 개성 등에서 찾고 있으며, 이런 특징을 한국인의 문화적 기질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는 연출자, 배우, 관객이 하나로 어우러져 제작되는 경우가 많고, 내용에 있어서도 독자성과 우수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어우러짐'이 한과 삶을 강조하는 풍류문화의 특징과 연결되어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