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규와 박선호철모를 쓴 군인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고, 포승줄에 묶인 채 김재규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의전과장 박선호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의 주요 임무는 한 달에 10회 정도 열리는 대통령의 연회 자리에 여성을 ‘조달’하는 ‘채홍사’ 역할이었다. 김재규와 박선호는 대구 대륜중학교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대륜중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 도서관을 통해 국권을 되찾으려 했던 ‘우현서루’의 명맥을 이은 곳이다. 김재규와 박선호 두 사제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국가기록원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18일 만인 11월 13일 김재규를 비롯 김계원ㆍ박성호ㆍ박흥주ㆍ이기주ㆍ유성옥ㆍ김태원ㆍ유석술 등 8명을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 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
기소된 지 8일 만인 12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뒤편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공판이 열리기 전에 김재규와 피의자들은 이미 국가원수를 시해한 극악무도한 살인범으로 매도되고, 비상계엄과 함께 통제된 언론은 합수부의 발표를 대문짝처럼 실어서 피의자들을 난자하였다.
합수부가 12월 8일 발표한 「김재규의 파렴치한 사생활」이라는 보도문이다. 대부분의 신문ㆍ방송이 그대로 보도하였다.
김재규는 정보부장 재직 시 10억여 원의 공금을 횡령하여 땅 2만 평을 매입했고,(…) 권력기관에 있으면서 공사(公私)를 분명히 하여야 할 입장임에도 친인척에 대하여 무조건 특혜조치를 하여줌으로써 많은 비난을 받았고(…) 1968년경 D요정 주인 유부녀 J를 이혼케 하여 소실로 삼고 공금을 유용하여 축첩에 탕진했으며(…) 중정부장 공관 건물을 빌려 쓰던 중 각종 압력을 가하여 반값에 강압적으로 탈취코자 하였으나 이번 사건으로 좌절되었다.
합수부는 김재규의 인격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는 내용을 덧붙히고 언론은 그대로 보도하였다.
값비싼 자기류, 고서화가 1백여 점에 달하여 진열이 곤란하자 그대로 창고에 방치해둔 상태였고, 주방 냉동실 등에는 각종 고기류가 즐비하게 쌓여 있음에도, 신변보호차 평소 한집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요원들이나 운전사들에게는 먹이지 않고 고기가 남아 썩어서 내다버리면서도 김재규가 먹다 남은 음식이나마 어쩌다 이들 요원이 먹는 것을 보면 힐책하는 등 너무나 비인간적인 처사에 주위 사람들의 빈축이 그칠 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