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광주 민주화운동 직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에 의해 보내진 첫 번째 전보. 당시 광주 지역에서의 소요에 대한 긴급한 보고가 담겨있다. (PUBLIC DOMAIN)
퍼블릭 도메인(미국 국무부)
하지만 이희성의 호언장담과는 전혀 다르게, 그날 자정 5.17 쿠데타가 벌어졌다. 하루 뒤에는 광주에서 비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상황 역시 전보에는 사흘 뒤인 21일 전해졌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에서의 소요가 현재도 진행되고 있으며, 수년간 지속될 상흔이 남을 정도의 큰 피해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문건에는 "광주 내의 시위 문구는 서울 및 다른 지역에서 보인 것과 많은 면에서 유사하지만, 광주는 소요에 빠졌다"며, "이에 지역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전했다. 전라도민이 받은 차별, 김대중의 구금 등에 대해 언급한 그는 "경찰과 군대는 특별한 수준으로 혹독하게 이에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일부는 심각한 저항 때문이었지만, 아마 그들이 전라도민들은 이렇게 혹독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진압이 군부와 중앙정부에 더욱 적의를 품게 할 것이고, 한국 내 정치 상황에 한 줌의 반미감정을 주입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다음날 긴급히 전송된 전보에는 박동진 당시 외교부 장관과의 대담이 담겼다. 박 장관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제스처를 요구하자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에게 해당 소요에서 온건함과 인내심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고, 군부가 붙잡힌 이들에게 온건의 제스처를 보여주지 않고 김대중만 공격하는 것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공격보다 내부적인 오판이 더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박 장관은 "자기 주변에 장군에게 간언할 수 있는 위상을 가진 인물이 없다"고 애석해했다고 전보에 기록되었다.
이후 23일 발송된 긴급 전보에는 외부 개입에 대한 우려, 평화적인 대화 권고 등의 내용을 담은 미국 정부의 성명을 내고, 이른바 '반미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그 성명을 광주 내부로 전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광주 민주화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마지막 전보는 26일 긴급하게 타전되었다. '푸른 눈의 목격자' 중 한 명인 인요한씨가 광주에서 서울로 와 미 대사관에 관련 정보를 제공한 덕분이었다. 인요한씨는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도로가 청소되었고, 무장한 학생 순찰자들이 질서를 지키며 부상자를 옮기고, 음식을 구할 수 있는 대로 배분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시위대의 구호도 바뀐 것이 눈에 띈다. 초기 시위대의 구호는 계엄령 해제, 군의 정치 개입 중단, 학살과 관련된 인물의 사퇴, 광주에서 체포된 정치범들의 출소 등이었으나, 5월 25일경에는 구금된 학생들의 해방과 불처벌, 죽임당한 자의 가족들에게 배상 및 장례식 요구, 긴급 구호물자 지원 등으로 바뀌었다.
이후 한 달 뒤인 6월 25일부터 공개된 문건들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을 사주했다며 내란죄로 김대중씨를 구속한 과정을 보고한 내용이 담겼다. 또, 김대중씨를 재판에 넘긴 상황에서 방청을 위한 비자가 불승인되는 등 국제적인 제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형을 선고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미국의 움직임이 드러나 있다.
글라이스틴 미 대사의 당시 역할 역시 문건에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학생들의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는 것 등에 대해 우려를 표한 부분이 여럿 드러난다. 이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군부독재도, 유혈사태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부분은 정확히 반대로 이루어져 씁쓸함을 더한다.
하지만 글라이스틴 대사의 지극히 소극적인 대응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5월 26일 문건을 보면, 광주 학생 지도자가 뉴욕타임즈의 헨리 스콧스톡스 기자를 통해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군부와의 중재를 부탁했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러한 부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지금과 같은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되면 대사관이 어느 쪽, 아니면 양쪽의 장기말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5월 18일에 완역한 것은 집단지성의 힘"
해당 문건 번역은 5월 15일 시작되어 나흘만인 18일 심야에 끝났다. 10여 명이 스캔본으로만 존재하는 문서를 먼저 텍스트로 활용할 수 있게 받아적은 뒤, 외교용어 및 축약어를 평문으로 옮기는 작업을 거쳤다. 작업이 끝난 뒤에는 10여 명이 번역을 하고, 5명이 동료평가와 검수를 했다. 집단지성이기에 가능한 프로젝트였다.
번역에 참가했던 대학생 이범수씨는 "외교문서다 보니 약칭이나 코드네임이 많은 것이 걸림돌이었다. 이미 외교문서를 본 적이 있는 분들이 약칭을 정리했지만, 축약어를 어떻게 풀어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라면서, "당시 정계 상황과 정계 인사, 한국 내 미국 인사 등의 인물들까지 꿰어야만 해석이 수월했다"고 말했다.
"빠른 시일 안에 끝낼 수 있을까 했는데 5월 18일에 마칠 수 있어 놀라웠다"는 이씨는 "언론인, 재미교포 분들이 상당히 참여해주셨다. 많은 분들의 협업과 노력 끝에, 위키문헌이라는 사이트에서의 집단지성이 있었기에 이룬 값진 성과"라고도 말했다.
이범수씨는 "많은 시민들이 완역본을 자유롭게 보고, 당시 상황에 대해 얻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를 활용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완역본 공유를 통해 자유로운 1차 문헌을 공유하는 위키문헌에도 위키백과 못지않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해당 완역본을 오월 단체 등에서 적극 활용한다면, 극우 미디어에서의 가짜뉴스 역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1996년 문건이 '이번에 공개된 문건'이라며 사안을 왜곡하는가 하면, 한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문건에 존재하지 않는 '인민재판'이 열렸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등 오역과 왜곡을 일삼고 있다.
해당 43개 문건의 완역본 전문은 위키문헌(
링크)에 실려있다. 문헌의 원본은 미국 정부의 퍼블릭 도메인으로, 번역본은 저작권이 완전히 말소된 퍼블릭 도메인으로 배포되어 5.18 전후의 사회 상황 등이 궁금한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열람 및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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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이 직접 번역한 미국 5.18 문건, 그 내용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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