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중앙)와 김재규(오른쪽), 그리고 차지철(왼족)
박도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했던 P씨의 증언.
사실 그런 점이 있지요. 근엄한 인품으로 정평이 나 있던 중앙정보부장 A씨의 경우 채홍(採紅) 같은 걸 무척 꺼렸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외로운 각하를 위해 적당한 술집이라도 하나 개발해두는게 괜찮다"고 자꾸 권유했어요. 그래서 정보부 주선으로 쓸만한 마담 한 명을 교섭해 당시만 해도 한갓지던 강남 지역에 요정을 차리게 했지요. 호스티스들도 물색해 놓고요. 적당한 기회를 보아 A씨가 대통령을 그곳으로 모셨지요.
그런데 일이 꼬이느라 그랬는지 하필 고르고 골라 각하 옆 자리에 앉힌 아가씨가 그날따라 아양이 지나쳐서 오두방정을 떨고 말았어요. 각하는 예의에 어긋나는 그런 타입의 여자를 싫어하셨거든요. 술좌석이 무르익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가버리셨습니다. 대통령각하가 다시 그 술집을 찾지 않은 건 물론이고, 마담은 울상을 짓고… 그래서 정보부 국장급들이 그 술집을 단골로 삼았지요.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당시 정보부의 간부들이 술값을 제대로 주었겠습니까. 결국 1년도 안 돼 요정은 문을 닫았어요. (주석 1)
박정희의 엽색행각은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에 사는 한 여인을 가끔 찾는 데서부터 본격화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의 서울 압구정동 H아파트 출입 염문이 귀에서 귀로 번진 것은 70년대 후반이었다.
"H아파트에 사는 배우 J양을 만나기 위해 깊은 밤 대통령이 나타난다", "그분의 여염집 나들이 때는 잠시 X동의 전깃불이 나간다", "K여고를 나온 재벌집 며느리가 목격담을 퍼뜨리다 혼쭐이 났다" 는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 귀를 의심할 만한 소문들이 대체로 사실로 확인된 것은 1981년께 서울민사지법에서였다.
현직 법관 H씨의 얘기.
81년경 기이한 민사소송이 들어왔다. 그 아파트 6동엔가 사는 한 주부가 경찰관을 상대로 갈취당한 돈에 대한 반환청구소송을 낸 것이었다. 그 주부는 승강기에서 대통령을 목격했고 즉각 경호원들로부터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그런데 참지 못하고 동네 주부들에게 귀엣말을 해 이 사실이 한 경찰관 귀에 들어갔다.
문제의 경관은 발설한 아주머니를 유언비어사범으로 입건하지 않고 눈감아준다는 조건으로 돈을 갈취했다. 상당기간 뜯어 낸 액수가 1000만 원도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통령이 죽고 세상이 바뀌자 주부는 분한 생각에…. (주석 2)
박정희의 압구정동 엽색행각이 종종 주민들에게 노출되는 등 물의를 일으키자 나중에는 청와대 인근의 궁정동 안가에 판을 벌였다. 최후를 맞은 곳도 궁정동 안가였다.
궁정동 세검정의 안가에 박 대통령을 '모셔' 초저녁엔 말동무를 하다가 밤 9시께 슬그머니 대통령과 미녀만 남겨두고 밀실을 빠져나오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배우, 탤런트가 대부분이어서 박(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79년 겨울 "저기 걸린 달력에 나온 미녀 모두가 안가를 다녀갔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70년대 말 그 숨막히는 유신 공포 분위기 속에서 하마터면 밀실비사들이 터질 뻔한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박은 "A양의 경우 부모들이 안가 출입을 알고 들고 일어나서 부장이 몇백만원 주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육 여사가 없는 청와대의 박 대통령은 심신양면으로 쓸쓸해지고 황폐해져 갔다. 사리분별이 바르고 오늘날까지도 여러 사람의 뇌리에 깨끗했던 퍼스트레이디로 남아있는 육 여사가 살아 있을 때는 분명히 달랐다. (주석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