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기념비' 밟는 이낙연 총리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018년 5월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일각과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전 총리가 당권 도전을 고민하는 또 다른 이유도 나돌고 있다. 바로 호남 출신 당 대표에 대한 부담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전남 순천)와 정세균 국무총리(전북 진안)에 이어 이 전 총리(전남 영광)까지 당 대표를 맡아 당·정을 모두 호남 출신이 차지하게 될 경우 당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호남은 이번 4.15 총선에서 5.18 망언자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던 미래통합당에 대한 철저한 심판 심리와 '이낙연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 등이 주요하게 작용해,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안겨줬다.
하지만 영남은, 문재인 정부 초대 장관을 역임한 대권주자급인 김부겸, 김영춘 마저도 낙선시켰다. 민주당 당선자가 부산(3명), 경남(3명), 울산(1명), 대구(0), 경북(0)을 통틀어 전체 65석 중 7석을 차지하는 데 그쳐 사실상 미래통합당에 완승을 안겼다. 이번 총선의 향방을 좌우했던 수도권 민심이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는 점에서 지역주의가 강화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2년 전인 6.13 지방선거에서 부산, 경남, 울산의 단체장들을 모두 민주당으로 밀어줬던 민심과 비교해 볼 때,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지역주의가 재현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80석 거대 여당을 출현시킨 이번 총선으로 영남의 고립감은 심화됐지만, 더 큰 고립감을 느낀 사람들은 PK, TK 지역의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호남의 민주당 몰표는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수도권도 민주당에 압승을 안겼는데, 유독 영남에서만 민주당이 완패를 한 총선 결과에 영남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전의를 상실할 정도의 좌절감에 빠져 있다. 이런 와중에 원내대표에 이어 당 대표까지 호남 출신이 차지할 경우, 영남에서의 반민주당 심리는 증폭되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미래통합당은 민주당 지도부구성의 '약한 고리'를 때리면서 지역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김종필의 자민련처럼, '영남의 자민련'으로 전락할 처지에 빠져 있는 미래통합당에 자칫 출구를 만들어 주는 격이 될 수 있다. 이낙연 전 총리가 당권 도전을 고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지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가 당권 도전을 접고 대권으로 바로 직행하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 이낙연에게 필요한 것
이낙연 전 총리가 대권가도를 순항하기 위해서는, 지역주의 타파에 온몸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 이후 지난 20년간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지역주의를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로 지역구를 옮겨 수도권 정치인으로 새 출발 하긴 했지만 이 전 총리의 정치 이력 대부분은 전남에 있다. 이 전 총리는 전남 4선 의원과 전남도지사를 지낸 호남 출신 정치인이다.
노무현, 김부겸, 김영춘 의원과는 다소 결이 다를지라도 나름대로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극적인 '드라마'를 써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낙점한 총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지지율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지역주의가 강한 한국 정치판에서 민주당 출신 호남 대통령이 자력으로 탄생하기는 쉽지 않다.
역대 대통령 선거를 살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지역연합을 주축으로 한 DJP 연합으로 치른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대통령은 40.27%,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38.74%,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 19.20%를 득표했다. 당시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 탈당해서 나오지 않았다면 김대중 대통령은 탄생하지 못했을 선거였다. 이인제 후보는 이회창 후보와 지지 기반이 겹치는 영남과 충청, 강원에서 30% 안팎을 잠식, 최초의 정권 교체에 1등 공신이 되었다. 그 공을 인정 받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대선 주자로도 나섰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고배를 마셨다.
노무현, 이회창 양자구도로 치러진 16대 대선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48.91%,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46.58%를 득표, 57만 표 격차의 극적인 승부로 노무현에 승리를 안겼다. 노무현은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16대 총선에서는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지역주의 타파에 몸을 던졌으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승부사적 기질과 지역주의 타파를 온몸으로 실천해온 드라마틱한 도전 정신이 쟁취해낸 '정치가 노무현'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