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극중 중전은 제 아비를 향해 “제가 계집이란 이유만으로 언제나 경멸하고 무시하셨죠. 그 하찮았던 계집아이가 이제 모든 것을 가질 겁니다”라고 선포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020)은 이러한 여성 빌런의 등장으로 한바탕 화제였다. 왜냐하면 드물게 '살부(殺父)'까지 감행하는 여성을 설득력 있게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서자인 세자를 내칠 진짜 왕자를 생산해야 할 임무가 부여된 중전, 그 뒤에는 만년권력을 도모하는 절대가문의 가부장이 있다. 그런 중전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갈취하기만 하는 아비를 향해 "제가 계집이란 이유만으로 언제나 경멸하고 무시하셨죠, 그 하찮았던 계집아이가 이제 모든 것을 가질 겁니다"라고 선포하는 장면은 어떻게 봐도 통쾌하다. 이는 페미니즘 리부트 혹은 대중화 이후 호전적인 여성들이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뚫고 등장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분명 이야기의 큰 축은 죽은 이들을 좀비로 되살려 왕권을 참칭(僭稱)하려는 세력에 맞서는 세자 군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는 여성으로서 전문인 의녀(醫女)가 있다. 인간이 어떻게 타인의 피를 탐하게 되는지, 왜 다른 이들에게도 전염되는지 전말을 파헤치는 미션이 이 여성 영웅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성 영웅으로서 의녀는 여성 빌런인 중전보다 덜 주목되는 듯하다. 확실히 빌런의 원뜻을 상기할 때, 홀로 나아가는 여성 영웅보다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주체들이 더 매혹적이다.
의녀 '서비'(배두나 분)가 세자 '이창'(주지훈 분)을 대표로 하는 남성 집단 안에서 제 역할을 한다면, 중전 '계비'(김혜준 분)는 구중궁궐 여성만의 세계에서 지존이다. 그의 악행에는 다른 여성들의 협조가 있다. 언뜻 형식적 여성 세력화로만 본다면 '계비'가 '서비'보다 더 파워풀해 보인다.
여성 정치에 대한 고민
그러나 어떤 경우든 쉬운 역전은 미심쩍다. 아버지의 자리를 아들이 아닌 딸이 물려받는 것만으로 여성정치가 실현되지 않음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킹덤>의 여성 빌런을 향한 환호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습니다"라며 스스로 좀비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중전. 그러나 남성만이 왕위를 세습하는 구조에서는 그도 '아들 빌런'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의 상징적 아들이 되기 위해 수많은 만삭의 여성들과 여아들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것은 절대 쉽게 누락돼서는 안 된다.
결국 여기에서 혈통적 왕권은 무화되겠지만, 상징적 가부장제는 손상되지 않는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 가부장을 살해한 여성 빌런, 그럼에도 그는 가부장제 자체는 태워버리지 못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아예 칼을 두른 또 다른 여성(전지현 분)의 등장이 예고됐다.
바야흐로 여성 빌런의 시대이다. 권력을 위해 차별도 불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있다. 때로 이 주장은 페미니즘으로 내세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의 정치가 페미니스트 정치가 되지는 않는다. 기꺼이 자기 몫을 주장하는 여성들, 그들의 여성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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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보다 더 눈에 띄었던 '킹덤' 속 중전,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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