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중식, 이재갑, 이준구 등 방역학자들을 ‘코로나 비선’으로 지목한 중앙일보 칼럼
중앙일보
결국 자발적으로 결성된 코로나19 전문가 자문단인 '범학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회원 보호'를 목적으로 해산되었습니다. 애초에 감염병·방역 관련 학과는 의료계에서도 기피 분야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없는 전문가들마저 '친중 인사', '사회주의자'로 매도해 정부 자문단을 해체시킨 것은, 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와 같은 세계적 지성들마저 핵무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매카시즘 광풍을 생각나게 합니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은 대부분 공직을 맡고 있거나 언론과의 접촉이 많은 학자들로 '비선'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심지어는 조선·중앙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전문가들이었습니다.
코로나 정치 안 먹히자, '정부 운 좋다' 태세전환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지적한 대로, "진실은 우리의 필요나 욕구, 정부, 이데올로기,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금지 안 해서 방역실패' 프레임은 미국, 유럽 등 '중국발 입국금지'를 실행했던 선진국들까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해 감염자가 폭증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됐습니다. 반면 한국은 전체 감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감염에 대한 실질적 방역대책에 있어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성과를 거둬 국내외의 긍정적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나날이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긍정 평가가 늘자, '코로나 정치'에 앞장섰던 언론들은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중국발 외국인 입국금지'를 외치던 언론은 방역 시스템의 성공 요인을 짚기 위해 무려 박정희 시절 국민의료보험 도입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중앙일보 <이현상의 시시각각/문재인 정부는 운이 좋다>(3/27), <전영기의 시시각각/2020년 총선 승자는 누구인가(3)>(3/30), <이하경 칼럼/코로나 방역, 박정희의 유산을 발견하다>(4/6)등 논설위원과 주필의 칼럼에서 이런 논리가 등장했습니다. 당연히 방역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은 누적된 토대에 영향을 받습니다. 이와 같이 등장한 것이 '모든 공은 질병관리본부와 국민에 있고 대통령은 자화자찬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이 프레임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 장면만 보면 간단히 드러납니다.
조선일보는 <문 대통령의 자화자찬 "확진자 감소 이어지면 한국은 방역 모범사례">(3/10, 안준용 기자)에서 신규 감염자가 점점 감소 추세였던 3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가 현재 추세를 계속 이어나가 안정 단계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방역 모범사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자화자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발언 내용을 보면 조선일보가 발췌한 발언 바로 다음 대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성과는 전적으로 방역 당국과 의료진들을 믿고 성원해 주신 국민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몇 주 후 미래통합당 측이 '국민과 의료진의 공을 정부가 가로채고 자화자찬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정부는 성과를 방역 당국과 국민에게 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언론들은 '자화자찬'이라고 평가했던 대통령의 과거 발언 내용을 확인하는 대신 미래통합당의 비판을 '따옴표 보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방역 대책이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코로나 정치에 앞장섰던 신문들은 경제 문제를 꺼내며 우회로를 찾으며 정부의 방역 대책은 '코로나 복권'이라고 평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태도가 잘 드러난 것이 조선일보의 <김창균 칼럼/문의 '코로나 복권', 실력인 줄 착각하면 쪽박 된다>(4/9)입니다.
이 칼럼에서 김창균 논설위원은 "나랏일이 잘 풀리면 정권 덕, 꼬이면 정권 탓이 되는 게 세상 이치"라며, "코로나 카드 정도가 아니라 '코로나 복권'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했습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위에서도 언급된 장세정 논설위원은 총선 직전 <투표일 다가오자 '마술'처럼 환자 급감…"공격적 검사해야">(4/13, 장세정 논설위원)에서 한 의사가 SNS에 올린 글을 근거로 정부가 총선을 염두에 두고 코로나 검사를 줄이고 있다는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이미 중앙일보 온라인판 팩트체크 기사 <"정부가 총선 전 코로나 검사 막는다" 의사가 부른 조작 논란[팩트체크]>(4/1)에서 2주 전 '일일 진단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라기보다 불규칙성에 더 가깝다'고 판정했으나 이 기사는 그다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2. 여론조사는 정말 '못 믿을 것'이었을까?
이번 선거기간에서 두드러진 보도 행태 중 하나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입니다. 총선 전 여론조사가 대체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세를 점쳤는데, 일부 언론들은 2월 초부터 선거 기간 내내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편향적이라고 규정하며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샤이 보수'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샤이 보수' 주장의 핵심 "여론조사 표본에 문 대통령 지지자가 많다"
2월 말, 언론들의 관심은 종로에 출마한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에게 쏠렸습니다. 여론조사는 전반적으로 이낙연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그러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리얼미터 때리기'에 나섰습니다.
중앙일보는 <리얼미터 표본 편중 논란... 응답자 66%가 "문 대통령 찍었다">(2/26, 한영익 기자)에서 "여론조사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65.7%가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밝혔다"며,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 대비 얻은 표 비율 31.6%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라고 보도했고, 조선일보의 기자 칼럼 <여론조사 표본은 입맛대로?>(2/27, 홍영림 기자)은 같은 이유를 들며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신뢰도를 비판했습니다. 홍영림 기자는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하고 있는 총선기획조사 결과도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대해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66%였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응답자 중 현 정부나 대통령 지지자가 너무 많아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이러한 논리는 한 달 뒤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여론조사 회사도 못 믿을 선거 여론조사>(3/25, 송평인 논설위원)에서도 유사하게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오히려 비슷한 기간 발표된 여론조사 중 두 후보의 격차가 가장 작았던 조사였습니다. '여론조사 표본에 문 대통령 지지자가 많아 여론조사 결과가 왜곡된다'는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기사 외에도 선거 기간 내내 다양한 형태로 반복·재생산되었습니다.
한국리서치 정한울 연구원은 선거 이후 한국일보에 <샤이 보수도, 여론조사 착시도 없었다>(4/20,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원)라는 기고문을 냈습니다. 정한울 연구원은 일련의 '진보 편향 여론조사'라는 주장에 "박근혜 정부 시절 선거 여론조사에선 '직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비율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과거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비율이 높게 나왔다. 미국 등 모든 나라 선거 여론조사에서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정치적 태도가 약한 응답층의 승자 편승 경향(밴드 웨건 효과), 현재와 과거 시점의 판단 변화에 따른 인지 부조화 해결 등 차원에서 승자를 지지했다는 응답이 실제보다 높게 나오기 마련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편차가 더 커진다는 데엔 학계에서 큰 이견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선거 전에는 기사 말미에서 '한 줄 반박' 정도로만 겨우 언급되던 내용입니다. 전문가들은 꾸준히 언론들의 '여론조사 편향 프레임'에 우려를 표했던 셈이죠.
독자에게 '대안적 사실' 믿게 하고 자신들까지 휘둘린 대표적 사례
선거 기간 여론조사가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으로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독 효과'라는 정반대의 현상이 꼽힙니다. 대세에 편승하려고 하는 '밴드웨건 효과', 패자에 대한 동정표를 주려고 하는 '언더독 효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중 어떤 효과가 강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컵에 물이 반이 있는 것을 두고 '물이 반이나 차 있다 vs. 물이 반밖에 없다'고 논쟁하는 것만큼이나 소모적입니다. 현실에서는 밴드웨건 효과로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나오는 정당에 표를 주는 사람만큼이나 어느 한 정당이 독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반대 정당에 표를 주는 사람도 섞여 있기 마련인데, 어떤 효과가 더 클지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어느 정당이 유리하게 나오는 여론조사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한 주장인 이유입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봤을 때, 안심번호 도입과 무선전화 비율 상승 등의 요인으로 지난 선거에 비해 여론조사의 정확도가 향상된 것이 오히려 사실에 가깝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사설/또다시 정권 입맛 맞는 여론조사, 수사로 신뢰성 검증해야>(2019/9/5)에서 "검찰 수사로 (여론조사에) 흑막이 있는지 가릴 필요가 있다"고까지 주장했었는데, 당연하지만 여론조사에는 흑막 따윈 없었고 조선일보는 흑역사만 누적하는 결과가 됐습니다. 이런 보도들이 쌓이면서, 보수 유튜브나 일부 인터넷 이용자들은 기존 여론조사와 신뢰도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길거리 여론조사'나 '네이버 댓글란 여론조사'를 맹신하며 '대안적 사실'에 빠졌습니다.
선거 기간 전후 나온 대표적 음모론인 '차이나게이트'나 '사전투표 조작설'은 이런 왜곡된 현실인식을 기반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최근 조선일보는 총선 후 사전투표 조작설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극우 인터넷 여론으로부터 '좌파 프락치'라는 공격을 받고 있는데, 자업자득인 셈입니다. 언론이 할 일은 여론조사에 부당하게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정확했다고 알려진 정당들의 내부 여론조사 및 판세 분석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내 분석하는 기사를 냈으면 더 좋았을 겁니다.
3. 온라인 허위정보 넙죽 받아먹은 '차이나게이트' 음모론
2월 말에서 3월 초 사이, '차이나게이트'라는 음모론이 확산됐습니다.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으로 구성된 중국인 여론 조작단이 친정부 댓글을 달며 국내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여론조작은 김대중 당선 때부터 시작했으며, 태블릿PC를 조작해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는 황당한 수준까지 나아갔습니다.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시작된 이 음모론은 3월 1일 극우 네티즌들의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띄우기 운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차이나게이트'가 네이버 인기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문재인 지지는 민심이 아니다 →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 옹호 청원이나 문재인 정권에 옹호적인 네이버 댓글은 조작이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논리로 시작된 음모론이 증거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선·동아는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초기부터 기사화에 돌입했습니다. 조선일보 <조선족이 국내 여론 조작? 온라인서 '차이나게이트' 시끌>(3/2, 오로라·표태준 기자)는 인터넷에 돌고 있는 음모론의 내용을 기사 전체에서 충실히 인용하더니, "중국이 다른 나라의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다는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라며 다른 나라의 의혹을 나열했습니다. 음모론에 신빙성을 부여하려는 태도입니다.
동아일보의 김순덕 대기자는 <김순덕 칼럼/청와대가 펄쩍 뛴 '차이나게이트'>(3/5)에서 "지금까지 청와대가 이렇게 신속하게 나선 적이 있었나 싶다"면서 청와대가 청원 사이트의 트래픽을 빠르게 공개해 '차이나게이트'의 허구성을 밝힌 것이 "중국의 여론 조작 여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청원 사흘 만에 딱 잘라 부인한 건 이례적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작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대해 시밀러웹 트래픽 통계를 기반으로 한 '베트남 청원 조작설'이 퍼졌을 때도 국가별 트래픽을 공개하며 대응한 적 있습니다. 애초에 근거 없는 음모론이 횡행하는 상태가 더 '이례적'인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