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쉬고 있는 개와 고양이들
박은지
우리 집 식구는 나름 '대가족'으로 총 여섯이나 된다. 사람 둘, 개 하나, 고양이 셋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가족 구성을 계획했던 건 아니다. 길고양이였던 제이를 우연히 만나 키우게 된 이후 유기묘 출신의 아리, 달이와 또 인연이 닿았다. 생후 8개월에 전 견주에게 파양된 리트리버 여름이는 제일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왔다.
집에 살아 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규칙적인 돌봄을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남편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출근 전에 여름이를 데리고 짧은 산책을 나가 배변을 시키고 온다.
프리랜서인 나는 조금 더 침대에서 밍기적거리다가 고양이 제이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난다. 제이가 빨리 밥을 달라고 내 얼굴 옆에서 칭얼거리면 나는 고양이 밥과 물을 챙겨주고 모래 화장실을 치우고, 심심한 얼굴로 쳐다보는 여름이와 낮 산책을 다녀온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집안이 좀 조용해지며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한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남편이 퇴근하면 다시 여름이와 저녁 산책을 나가고, 집에 와서 양치질을 시키고, 나도 그 옆에서 고양이 빗질을 하거나 발톱을 깎아준다.
사소한 것 같지만 중요하고,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귀찮은 일들이다. 이렇게 개와 고양이를 돌보는 것은 우리에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굳이 걱정하는 건 역시 부모님이다. 올해 결혼한 지 6년차가 되었고, '딩크'로 살겠다고 결정했지만 엄마는 아직도 나와 통화할 때면 빼놓지 않고 아기에 대한 잔소리를 한다.
"아기를 낳아야 진짜 행복을 알게 돼. 고양이는 엄마가 키워줄 테니까, 아기 한 명만 낳아서 키워봐."
동물을 키우느라 아기를 안 낳을까봐, 우리가 개와 고양이는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 혹은 행복의 결정체를 놓치고 살아갈까봐, 엄마는 그게 늘 걱정인 모양이다. 사실 어렸을 때는 나도 가족이란 응당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 두 명 정도로 이루어진 네 명의 구성이 가장 평범하고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삶의 모양이 나에게 딱 맞는 옷이 아니라는 걸,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생명의 범위가 나의 네 마리 반려동물까지라는 것을 이제 선명히 알고 있다. 엄마에게 늘 설명하는 것처럼, 나는 아이 대신에 반려동물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부부의 삶 속에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한 것뿐.
돌봄의 책임과 무게
주변을 보면 나중에 꼭 보육원의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고, 부부 사이에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싶다는 친구들도 있다. 누군가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돕는 일에, 누군가는 독거노인을 돕는다는 일에 지나치지 못하고 꼭 손길을 보탠다.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일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항상 새삼스럽게 놀란다. 이렇게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또 새롭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왜 동물을 애지중지하느냐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유독 동물들에게 마음이 갔다. 말없는 반려동물의 존재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또렷한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동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나를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리라고 믿기 때문에, 동물의 삶과 그들의 권리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반려동물을 내 가족의 일부로 맞이하여 함께 살아가는 건 나에게는 가장 당연하고 또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꼭 잘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에, 동물과 살아가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했다. 잘못된 애정의 방식이 오히려 서로를 괴롭게 할 수 있는 건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부부가 부모가 되어가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도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연구했다.
그리 넓지 않은 집안에서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에게 맞는 환경을, 개에게는 또 개에게 맞는 규칙과 활동을 제공해야 했다. 고양이가 제한된 공간 내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개가 공동주택에서도 건강하게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산책과 놀이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했다.
무엇보다 나는 한 생명을 향한 보호자로서의 책임은 지갑 속에 들어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 기본적인 사료, 간식, 모래, 장난감 같은 필수적인 비용 외에도 혹시 모를 병원비까지 고려해 경제적인 지출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 어리고 귀여운 아기 시절부터 5, 6년 정도는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비용 정도만 든다 치더라도, 언젠가는 이 동물이 반드시 늙고 병든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린 나이부터 크고 작은 병을 앓았던 고양이들에게 천만 원 넘는 치료비를 쓴 경험이 있기에 반려동물의 병원비는 항상 예비로 생각해두고 있지만, 막내 여름이를 입양하고 나서는 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겼다.
한 살이 채 안 된 아기답게 어찌나 철딱서니가 없는지, 우리 능력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워 전문기관 교육 비용으로 백만 원을 또 지출한 것이다. 반려동물은 나의 심심함과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나의 돌봄과 책임을 요구하는 존재라는 걸 자주 실감한다.
다른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