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필문의 묘소에서 도굴되어 일본으로 불법 밀반출되었다가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의 노력으로 2017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분청사기 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 묘지’ 이 묘지는 보물 제1993호로 지정됐으며,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임영열
광주광역시 남구 이장동에서 태어난 광산 이씨, 필문 이선제는 1411년(태종 13)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이어서 세종 원년에 임시로 치러지는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예문관 제학과 집현전 수찬, 형조참의, 병조참의, 강원도 관찰사, 예조참의, 호조참판, 세자 우부빈객 등의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이조판서 정인지와 함께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를 개수하고 태종실록을 편찬하는 등 조선 초기 세종과 문종 때 광주를 대표하는 문신이었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광주 향약을 기초하고 실시했다. 그의 높은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사후에 부조묘(不祧廟)를 하사 받았다.
부조묘란 불천위(不遷位)를 모시는 곳으로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를 모셔놓고 영구히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필문의 묘소 아래에 세워졌으며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