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2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대적인 '규제완화'로 시작하다
5월 들어서면서 코로나19 감염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자 정부가 물리적 거리두기 강도를 낮춰서 '생활방역'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서서히 코로나19방역과 함께 중단된 경제를 다시 살려내는 '경제방역'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통령은 극심하게 침체된 고용과 경제를 회복시키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비전을 열기 위해서 '비대면 산업'을 화두로 하는 '한국형 뉴딜'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지난 4월 29일 경제위기 대응을 긴급구호 성격에서 상시적 위기관리와 경제회복 준비체계로 전환하겠다면서, 경제 전시상황에 대응하는 사령탑으로서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회의(경제 중대본)' 첫 회의를 열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첫 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나온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는 '규제완화'였다. 회의는 "포스트 코로나 대응을 위한 경제체질 개선의 가장 큰 걸림돌이 규제"라고 지목하면서, 실제로는 코로나 이전부터 관련 업계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의료신기술, 헬스케어, 데이터, 미래차 등 '10대 산업분야 56개 규제혁파 추진과제'를 정부의 이후 핵심과제로 지정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책임지고 기업간 공정성, 환경과 고용영향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규제영역을 아예 민간주도로 하겠다면서, "규제를 받는 대상자가 규제 완화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는 평가를 받는 자가 평가기준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황당한 발상이다.
특히 정부는 "지금까지의 규제개선 방식을 완전히 전환하여, 민간주도로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겠다면서, 이런 방식은 '별도의 재정 투입 없이' 민간투자 활성화를 유도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인다.
요약하면 이렇다. 재정건전성 논리에 사로잡힌 정부는 포스트 코로나 이후를 '공공투자'로 살려내기 보다는, 그 동안 기업들이 요구해왔던 규제완화 등을 대폭 수용해서 사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해서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대규모 공공투자와 경제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상황적 절박감을 이용해 그동안 여러 가지 합당한 이유로 통제되어 왔던 기업들의 비즈니스 욕구가 폭발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가 무차별하게 수용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원격의료·원격교육 등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변할 산업인가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코로나19 충격으로 수요와 공급, 금융 등 모든 측면에서 경제상황이 극히 불확실하다. 어떤 민간기업들도 쉽게 추가적인 투자는커녕 하고 있는 사업의 자금흐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정신이 없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비대면 생활 패턴'을 이용해서, 관련업계들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통제해왔던 규제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원격의료'나 '원격교육' 등 각종 비대면 온라인 비즈니스가 갑자기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경제방향으로 둔갑하기 시작한다.
'비대면 산업(untact industry)'이 새롭게 시장 기회로 떠올랐다는 주장은 사실 매우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관점이다. 비대면 사회, 언택트 사회가 우리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뉴노멀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치 911테러를 핑계로 안보산업을 잔뜩 키운다고 테러가 완화되지 않듯, 감염방지를 위해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취해진 거리두기를 아예 영구화할 생각이 아니라면 비대면 일상은 새로운 삶의 표준이 될 수 없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비대면 산업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원격의료나 원격교육 등 온라인 비지니스가 마치 코로나 재난 이후 사회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인 것처럼 포장되는 데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재난으로 확실히 확인한 것은, 오랫동안 업계가 요구해온 원격의료나 헬스케어 산업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공공의료의 부족이 문제였다.
당연하게도 코로나 이후에는 지역별로 공공의료시설과 공공병상을 늘리고 공공 보건의료인력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공공정책이 설계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사설 학원등 관련업계가 요구해온 원격교육등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슈는 아니고 각종 비대면 비즈니스 역시 규모나 일자리 창출효과 등도 따지지 않고 정부가 마구 장려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파격적인 규제완화를 해가면서까지 정부가 직접 나설 일도 아니다.
앞서 911테러이후 미국에서 안보산업의 급팽창이 평화를 가져오지 않았고, 대형 쓰나미 재난이후 관광 레저산업이 스리랑카 주민에게 주거안정이나 고용안정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정부가 코로나19 재난 이후를 설계한다면서 일부 업계의 규제완화 요구를 들어주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막상 심각한 고용불안정과 소득불안정에 힘겨워하는 국민들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피해자와 시민을 위한 재난복구가 아니라, 재난을 돈벌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전형적인 재난자본주의 기법에 정부가 장단을 맞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