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도시, 서울> 책 표지.
글항아리
나는 <기생충>에 나오는 가난함을 겪어보지 못했다. 와이파이가 제대로 안 잡혀서 천장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도 않았고, 비가 오는 날에 빗물이 넘쳐 화장실 변기 위로 피해 본 적은 더더욱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런 '가난함의 감각'은 어쩌다 한 번씩 밖으로 드러날 때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게 된다.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가 쓴 <착취도시, 서울> 역시 가난함의 감각을 알려주는 책이다. 2018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의 화재로 인해 7명이 사망하고 12명의 부상자를 낳았을 때, 저자는 현장에 있었다.
국일고시원 화재가 난 뒤 며칠 뒤부터 저자는 취약 계층의 주거 실태와 관련한 취재를 위해 쪽방과 고시원 등을 뒤지러 다닌다. 슈퍼 가게 주인에게 5천원짜리 음료 값으로 1만 원을 쥐어주고 나서야 쪽방촌 사정을 잘 아는 주민을 소개받는다. 그렇게 박씨를 만난다.
어쩌다 박씨를 만나 취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나는 1만 원이라는 값싼 돈에 그의 시간을 샀다(정확히 말하자면 슈퍼마켓 주인에게 지불했다). 그는 "20년 동안 크게 땅값을 올리지 않고 이 자리에 있게 한 슈퍼 주인 부부도 너무 좋은 사람이고 이젠 친구 같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이 슈퍼 주인 부부도 작은 착취의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의 공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일러조차 들어오지 않는 낡은 방들로 매달 200만 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단돈 1만 원에 20년 동안 알아왔다던, 친구 같은 그의 가난과 사생활을 전시하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쪽방은 집이 아닌 비주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법적, 정책적으로 제대로 된 정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국가 통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드니 각종 법망의 사각지대가 되기에 십상이다. 그렇게 사각지대로 남은 박씨의 쪽방 역시 열악하긴 매한가지다. 10년 전부터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한 달 사이 방세가 3만 원이 오르기도 했다.
박씨의 경험만으로 기사를 쓸 순 없으니, 저자는 실제로 창신동 쪽방촌의 실소유주를 찾기 시작한다. '사실 이 골목에 있는 쪽방 건물은 모두 우리 집주인 거다. 그 집 가족들은 돈을 모아 근처에 빌딩도 세웠다'라는 박씨 증언의 근거를 찾기 위해 쪽방 근처 건물들의 등기부등본을 죄다 뒤졌다. 소유권과 채무관계를 밤새 일일이 정리하고 보니 한 가족이 그 일대의 쪽방촌을 소유하는, 일종의 '가족 비즈니스'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거기본법의 최저 주거 기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인간이 존엄성을 잃지 않을 필요충분조건을 조금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공간. 방 한 칸에 들어찬 가난한 이들이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기대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은 1990년대 주말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환상일 뿐. 정말로 가난해서 남은 것이라곤 생명밖에 없는 이들은 쪽방촌에서 방치되거나, 착취당하거나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지만 주어졌다. 기본적인 인권마저 누락된 공간에서, 빈자(貧者)가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스스로 죽을 권리' 뿐이었다.
저자는 쪽방촌을 중심으로 하는 가족 비즈니스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곤을 고착화시키는 구조에 일조하고 있음을 한국일보 1면에 특집 기사로 내보내는 데에 성공한다. 덕분에 '이달의 기자상', '올해의 데이터기반 탐사보도상' 등을 수상했다.
천만 도시 서울의 그림자, 주거빈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