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6월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던 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인권단체의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지유석
모처럼 보수 개신교 단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바른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오직예수사랑선교회', '올바른인권세우기' 등 보수 개신교 단체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습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규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NCCK가 선거 다음 날인 16일 내놓은 입장문 중 차별금지법 관련 대목을 문제 삼았다.
입장문 중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이자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필수 요건이다. 제21대 국회는 온전한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섬으로써 소수라는 이유로 그 존재를 무시하는 혐오와 차별을 넘어 환대와 평등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면서 "21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 시행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었는데, 보수 개신교 단체는 이를 집중 성토했다.
보수 개신교의 동성애 반대 혐오 선동이나 차별금지법 무력화 시도는 새삼스럽지 않다. 실제 22일 NCCK 규탄 기자회견을 주도한 이는 최근 적극적으로 반동성애 활동을 하는 주아무개 목사였다. 그러나 어제 있었던 기자회견은 예사로이 지나칠 수 없다.
벌써 일부 개신교계 언론 매체에선 차별금지법 반대 여론몰이가 진행 중이다. <크리스천투데이>는 21일 자에 이명진 의사평론가(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의 칼럼을 실었다. '차별금지법 제정 시도에 저항하자'란 제하의 칼럼에서 이명진 의사평론가는 이렇게 적었다.
"거대 의석을 차지한 집권 여당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이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기독교와 정면충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수순이다. 첫 충돌에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 낙타의 콧잔등을 세게 때려야 한다. 점잖은 성명서 발표와 적당한 타협안은 있을 수 없다. 초기에 강하게 나가야 한다. 여러 가지 핍박과 피해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편을 들어 주지 않고 비난의 날을 세울 것이다. 하지만 각 교단 교단장들과 신학교 학장은 목숨을 걸고 대항해야 한다."
바뀐 의회권력, 보수 개신교 불안 자극했나
4.15 총선 결과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의회 의석 180석(지역구163, 비례정당 17)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개헌 빼곤 다할 수 있는 의석수다. 마침 총선 다음 날 NCCK는 입장문을 내고 차별금지법 제정, 시행을 주문했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발의된 시점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 단체들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라는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법은 이제껏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 선동과 보수 야권의 발목잡기로 인해 차별금지법은 공론화 단계에서 좌절되기 일쑤였다.
보수 개신교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취지는 동성애 조장과 거리가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권기본법"이라고 설명한다.
보수 개신교계로부터 성토당한 NCCK도 반박 입장문을 통해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처벌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차별인지를 밝히는 기준이며, 그 차별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선언하는 의미가 더 크다"라며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후 각론을 재정비해 나가는 기초를 제공하는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보수 개신교의 주장이 사실에 부합하느냐를 두고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공론의 장으로 나올 때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번번이 무력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