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조광조의 영정. 조광조가 사약을 받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유배지의 영정각에 모셔져 있다.
이돈삼
조광조(1482∼1519)는 개혁정치의 상징이다.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찰, 사간원 정언,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을 지냈다. 그는 유교를 근본으로 한 왕도정치를 주창했다. 도교를 추앙하던 기존 훈구파의 부패와 비리를 공격한 이유다. 위훈 삭제가 출발이었다. 중종반정으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103명 가운데 78명의 거짓 공적을 삭제했다. 전체 공신의 4분의 3이 해당됐다.
도교 주관 제사였던 소격서도 없앴다. 성리학의 이념을 세우는 데 필요했다. 사회 실천운동으로 덕업상권(좋은 행실 서로 권장), 과실상규(나쁜 행실 서로 규제), 예속상교(서로 사귐에 예의 지킴), 환난상휼(걱정거리나 어려운 일 서로 도와줌)을 4대 덕목으로 한 향약을 실시했다.
시문과 시가 중심의 기존 과거제 외에 학행과 덕행, 성리학적 소양을 보는 현량과를 실시했다. 요즘 쓰는 말로 혁신을 추진할 인재를 따로 뽑았다. 일부 토지를 국유화해 백성에 나눠주는 균전제도 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