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주공아파트반포주공아파트는 동작대교 남단 한강변을 매립하여 조성한 16만7000평(55만여㎡)의 부지에 건설됐다. 242억원이 투입된 반포1단지는 초대형 아파트단지로 당시로서는 중대형 평수인 22평형, 42평형, 64평형으로 구성되었고, 중앙난방과 복층형이 처음 도입되어 주민들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1978년 5월 20일 촬영
서울역사박물관 디지털 아카이브
태구민 후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강남 3구는 보수 정당의 텃밭이다. 이곳에서 출마하는 보수 정당 후보는 결정적 하자만 없다면 상당한 당선 가능성을 안고 출발선에서 발을 뗀다. 북한 정권 비판과 탈북민 정책에 주력하는 태 후보가 당선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그런데 부촌이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 것은 아니다. 부유한 지역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다면,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두드러졌던 여촌야도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공업화정책의 결과로 도시가 훨씬 부유해졌는데도, 그 시절에는 보수 여당이 농촌의 지지를 받고 야당은 도시의 지지를 받았다.
과거에는 전국에서 가장 잘사는 서울 지역에서 민주 계열 정당이 강세를 보였다. 한마디로 서울은 '야성의 도시'였다. 이는 잘 산다고 해서 무조건 보수 정당을 찍는 게 아님을 잘 보여준다.
이 점은 강남 개발로 인해 강남권이 부자 동네가 된 이후 역대 선거에서도 드러난다.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강남구가 독립되면서부터 강남권 역사가 본격화됐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강남권은 야당 성향을 표출했다. 서울 시내 여타 지역들처럼 여촌야도 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1개 선거구에서 2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진 1979년 10대 총선 때, 지금의 서초구까지 포괄했던 강남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는 야당인 신민당의 정운갑 후보였다. 51.5%를 득표한 그는 28.4%를 기록한 2위 민주공화당(공화당) 이태섭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전두환 신군부의 12·12 및 5·17 쿠데타로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 치러진 1981년 11대 총선에서는, 민정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태섭이 35.9%를 얻어 2위인 민주사회당 고정훈 후보(29.7%)와 동반 당선됐다. 하지만 이 시점은 상당수 정치인들이 정치규제 대상자로 묶인 데다가 민정당 2중대인 관제 야당들이 득세한 탓에 정통 야당이 힘을 쓰지 못할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후보가 당선된 것을 두고 이 지역에서 보수 정당이 강해졌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 점은 정통 야당이 정계에 복귀한 1985년 12대 총선에서 신한민주당 김형래 후보와 민한당 이중재 후보가 각각 1·2위를 차지하고 민정당 이태섭이 3위로 밀려난 데서도 확인된다.
강남권에서 민주 정당이 우세를 점하는 경향은 6월항쟁 이후의 소선거구제(1선거구 1인 선출) 하에서도 이어졌다. 1988년 13대 총선 때 강남권 6개 선거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보수 정당 후보는 삼성동·대치동·개포동·전곡동·일원동이 포함된 강남을에서 출마한 이태섭뿐이었다.
동일한 경향이 3당 합당 뒤의 1992년 14대 총선 때도 연결됐다. 강남권 6곳에서 보수 정당이 당선된 곳은 민주자유당(민자당) 김덕룡 후보를 배출한 서초을뿐이었다. 이때 강남권 여타 지역에서는 야권 거물들이 대거 당선됐다. 서초갑에서는 신정치개혁당의 박찬종, 강남갑에서는 통일국민당의 김동길, 강남을에서는 민주당의 홍사덕이 당선됐다.
1981년 12월 29일자 <경향신문>에 강남 학군의 인기를 반영하는 '강남에 학생 위장전입 러시'라는 기사에 실린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강남권이 최고 부촌이 된 것은 1992년 14대 총선보다 훨씬 이전이다. 그런데도 1990년대 초반까지도 강남 유권자들은 보수 성향을 갖지 않았다.
14대 총선은 민정당 주도하에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이라는 보수 대연합을 이룬 뒤에 치러진 첫 선거였다. 그런데도 강남권은 보수 대연합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야당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1996년 1월 31일 자 <한겨레> 기사 '4·11 총선 판세 예비점검 3. 서울 강남권역'이 "서초에서 강남과 송파를 거쳐 강동까지 이어진 강남 지역은 특성상 서울에서 가장 지역적인 바람을 타지 않는 곳"이라며 "대체로 인물로 승부가 갈라지는 곳"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은, 강남권 유권자들이 집권여당인 보수 정당에 무조건 표를 주지 않고 유능한 후보들에게 소신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1996년 신한국당, '강남 벨트'를 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