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환경공단 운북사업소에서 영종도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친환경 주말농장 텃밭을 무료로 분양한다(자료사진).
인천환경공단
나는 국제회의 기획사다. 국제회의를 한국으로 유치하고, 유치된 국제 회의나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내 회의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국제회의 기획사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일이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기로 한 회의나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하반기로 연기되어서 그렇다. 갑작스럽게 일이 줄고 재택근무 횟수가 늘어나고 시간이 많아졌다.
예상치 않게 찾아온 이 여유가 아직은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항공, 관광, 호텔업계 등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업무 마감일을 의식하면서 기한에 맞춰 일하고, 행사 현장에서의 분주함에 익숙해져 있던 일상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고요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나에게는 어렵게 얻은 3.37평의 텃밭이 있었다.
내가 텃밭을 시작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머님이 텃밭을 핑계로 자식들 집에 더 자주 오셔서 자식들도 보고, 텃밭도 살펴 주실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했다. 이 참에 어머님으로부터 텃밭 농사의 기술도 조금이나마 전수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텃밭 개장일인 3월 31일경까지도 코로나19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의 서울 나들이도, 그로인한 텃밭 농사 기술도 직접 전수받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어렵게 분양 받은 텃밭을 어떻게 가꿀지에 대한 부담감이 몰려 오기 시작했다.
나의 부담감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이 구청 도시 농업과에서 3월 말 텃밭 개장일을 안내하는 문자와 함께 '도시텃밭을 분양 받았는데 초보농부라서 어떻게 시작할지 고민이 많으시죠?'라는 제목으로 '서울농부포털' 온라인 무료 강좌 링크를 보내주었다.
나 같은 초보 농부를 위한 친절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주말 농장이나 소규모 텃밭 농사를 하는 분들의 블로그도 들어가 보고, 작물 별로 씨 뿌리기를 하는 작물과 모종을 심는 것이 좋은 작물, 심는 시기 등에 대해서도 알아보게 되었다. 이때부터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텃밭을 분양 받게 되었다고 자랑하고, 수확을 하게 되면 나누겠다는 공약도 했다.
드디어 3월 31일 우리집 텃밭 분양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남편과 함께 텃밭에 도착해서 16번 우리집 텃밭을 만났다. 생각보다 꽤 큰 밭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밭농사를 크게 하시는 시어머님께서는 3.37평에 무슨 작물을 얼마나 심겠느냐고 하셨는 내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크기의 텃밭이어서다.
나는 동영상 강의에서 배운 대로 밭에 있는 잔가지와 돌 그리고 뿌리들을 제거하고, 남편은 유기질 비료를 뿌리고, 두둑을 만들고 이 날은 2개의 두둑에 수미감자를 심었다.
150여 개의 개인 텃밭이 있는 곳이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나와 밭을 정리하고 거름을 주는 모습이 새 봄을 맞이하는 축제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집과 회사를 오가면서 살다가 탁 트인 공간에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면서 흙과 하늘을 가까이 마주하는 느낌이 좋았다. 처음 내가 텃밭을 한다고 했을 때 마뜩잖게 생각하던 남편도 쟁기로 땅을 고르고 거름주는 일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게 '키우는' 사람들의 마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