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한글회관 앞의 주시경 선생 흉상
일제강점기 중후반, 그러니까 1936년 12월 총독부가 항일운동으로 치안유지법을 위반하고 전향하지 않는 사람을 감시ㆍ처벌하고자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하고, 1937년 6월 온건하고 타협적인 민족개량주의 운동단체인 수양동우회 회원들까지 검거하면서, 국내에서는 소수의 사회주의계열의 지하운동을 제외하면 항일운동이 거의 불가능했다.
1937년 7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면서 시작된 중일전쟁으로 전시체제가 선포되어, 한반도는 거대한 병영이고 전시물자 수탈처가 되었다. 신사참배가 강요되고 금비녀ㆍ금가락지를 뽑아 일제의 국방비로 헌납하자는 애국금자회에 여성 명사들을 앞장세웠다.
항일민족운동이 자취를 감추고 있을 때, 그 이전부터 공개적으로 민족운동의 맥을 이은 것은 한글운동계열 인사들이었다. 1921년 12월 김윤경ㆍ장지영 등 주시경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16명이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한 것을 시발로, 1926년 11월 최초로 한글날 행사, 1927년 『한글』잡지 창간, 1929년 10월 조선어사전편찬회 조직, 1930년 7월 하기 한글강습회 개최, 1930년 12월 「한글 맞춤법 통일안」제정을 위한 준비, 1931년 1월 조선어학회 구성 등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저항하면서 조직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