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먹는 사람들(1885)반 고흐 Source: Wikimedia Commons
반 고흐 뮤지엄
몸을 힘들게 움직여 먹고사는 그들은 거칠고 주름진 손과 굳은 얼굴을 하고 있다. 아무리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도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간신히 배를 곯지 않을 정도의 단품의 감자 뿐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각자 서로를 챙기며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다. 야위어서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동그란 두 눈은 생기를 잃은 퀭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 온기를 발견하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다.
고흐는 말하자면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서 연민 내지는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고흐의 도움의 손길은 언제나 외면을 받거나 거부되곤 했다. 그 자신이 어쩌면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도움이나 위안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그 안의 열정에서 소름끼치는 광기를, 그 안의 희망에서 미치광이의 집착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고흐의 이러한 일방적인 방식은 어느 누구의 호응도 얻지 못한 채 변화를 맞아야 하는 시점이 되었고, 결국은 고흐도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파리로 떠나기로 했다. 그 곳에서 고흐는 역시나 예술계에 푹풍처럼 등장해 하나의 큰 힘을 형성한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그 또한 몽마르뜨 카페의 테라스 풍경이나 세느 강변의 모습 등을 화폭에 담았다.
하지만 고흐의 그림은 인상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사실 고흐가 파리에 도착한 1886년에는 이미 인상주의가 폭풍처럼 휘젓고 지나간 뒤라고 할 수 있었다. 그 해에 인상주의를 표방한 마지막 전시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그림은 후기 인상주의라 이름할 수 있는 쇠라의 '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였다. 고흐 또한 미술사적으로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데 이는 고흐가 인상주의와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렸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고흐는 빛의 작용에 따른 색의 변화에 중점을 둔 인상주의의 그림과는 달리 색의 임의적 선택이나 보색 대비에 따른 긴장과 대조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고흐의 그림에는 빨강과 녹색, 노랑과 남색이 나란히 칠해진 경우가 많다. 보이는 색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칠하고 싶은 색을 임의로 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고흐는 특히나 노란색을 좋아했다. 그에게 노란색은 태양의 색이었고, 희망의 색이었다. 그의 그림에서 태양은 노란색 물감으로 두껍게 덧칠하여 커다란 둥근 모양으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리를 떠나 정착하게 된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고흐는 자신이 꿈꾸던 화가들의 공동체를 고갱과 함께 이루어나가려 했다. 결국 두 사람의 공동 거주와 작업은 두 달만에 끝나버리긴 했지만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들은 작열하는 해를 닮은, 열망과 기대로 만발한 노랑의 축제와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