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0일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기관보고에 출석해 답변도중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남소연
김대중·김영삼·정주영 후보가 격돌했던 1992년 대통령선거 때는 대통령선거법 제65조에 따라 선거일 공고일인 11월 20일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됐다. 그러다가 선거일 7일 전인 12월 11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이 부산 초원복국집에서 부산시장·부산경찰청장·부산교육감·부산지검장·부산상공회의소장 및 안기부 부산지부장과 함께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 감정을 부추겨 선거 판세를 바꾸는 논의를 했던 것이다.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돕고자 벌어진 이 사건은, 언뜻 봐선 민자당이 비판의 화살을 받는 결과로 이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이 사건은 오히려 민자당 지지층을 결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만약 그 기간에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가 허용됐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장담할 수 없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초원복국 모임이 민자당 지지층의 경각심을 촉구하기는커녕 되레 이들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면, 이것이 투표일 당일에 유권자들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02년 대선 전날에는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를 파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무현 후보를 곤경에 빠트릴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오히려 노무현에게 표가 몰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깜깜이 선거' 기간이 얼마나 극적이고 역동적인 시기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2016년 20대 총선 때도 막판에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 4월 4~6일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이 39%, 더불어민주당이 21%, 국민의당이 14%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선거일이 임박해 새누리당에서 벌어진 '진박 공천 논란'이 상황을 바꿔놨다. 이로 인해 중도층 표심이 민주당으로 옮겨가면서 민주당이 123석, 새누리당이 122석을 얻었다. 이 결과는 그해 겨울의 촛불혁명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고 하지만, 선거에 관한 역사는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에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총력이 집중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기간에 유권자들은 깜깜이로 지내야 한다. 정보를 많이 얻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정보가 차단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