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
문화재청
사찰 목수의 대가 김덕희, 그의 계보는?
일본인 목수 이케다(池田)를 이기고 1937년 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 해체보수공사의 도편수를 맡은 김덕희. 당시 수덕사에 있던 만공스님은 왜놈에게 우리의 건물을 맡길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이에 김덕희와 합심해 도편수 자리를 지키는 것에 성공했다.
그 후 월정사 대웅전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다. 뛰어난 솜씨를 인정받은 김덕희는 이번에도 도편수로 자리 잡고, 그의 명성을 들은 목수들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모이게 된다. 그곳에는 現 대목장 보유자인 '최기영'과 '전흥수'도 끼어있었다.
그 중 최기영은 김덕희의 동생 김중희의 조바(여관에서 일을 하던 하인)였다. 당시 김중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 '이응로 선생 사적지' 내부에 있는 수덕여관을 관리했다. 그는 목수는 아니었으며, 관리인에 가까웠다. 형 김덕희의 월정사 대웅전 보수공사 소식을 듣고 도와줄 심부름꾼으로 최기영을 보낸 것이었다.
김덕희의 정통계보는 큰아들인 김윤원에게 이어진다. 김윤원은 이를 김범식에게 전수한다. 김범식은 2015년 경북 무형문화재 제37호 '대목장'의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김덕희가 도편수로 활약한 김천 직지사를 시작으로 전수과정을 이어받았다.
또 다른 제자로는 김달원 대목장이 있었다. 김중희와도 연이 깊었으며, 김덕희를 도와 월정사 대웅전 복원작업을 함께 하며 목수 일을 배웠다. 그 후 1975년 광덕사 천불전(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의 옛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많은 이들이 김덕희의 가르침을 받은 김달원이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목수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現 보유자인 전흥수의 목자재창고에서 자재에 깔려 사망하고 제자가 없어 그 계보가 끊어지고 만다.
이렇게 한국 목수계의 쌍두마차인 조원재와 김덕희의 계보를 살펴봤다. 현재는 문화재수리 도편수로 활약하면 부와 명예가 함께하는 직업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으나, 당시에는 막노동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천대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건축에 대한 계보를 잇고, 전통을 지킨 도편수들에게 무한한 찬사가 쏟아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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