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교수가 쓴 <골목길 자본론>(2017) 표지
다산3.0
-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잘 될 거라는 생각이 여전히 강한 것 같다.
"앞으로는 불가능하다.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산업 쇠락 지역) 지역이 몰락하면서 어떻게 됐는지를 봐라. 트럼프 같은 인물에 희망을 걸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국 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인물을 지지한 건 (지역민들이) 혼자 안 죽겠다는 물귀신 작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이 얼마나 불안한 사회로 전락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지역 소멸을 방관하면 트럼프보다 더한 인물이 집권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보여주듯이 모든 지역이 서로 의존한다. 서울이 전부를 먹여 살릴 거라고 주장하는 건 무책임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다."
- 최근 라이프스타일을 설명하는 27편의 글을 블로그에 썼다.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로컬과 골목에서 많은 창업가들이 분투하고 있는데,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우리 사회와 경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라이프스타일의 근원과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그 본질을 통찰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서구의 라이프스타일은 큰 흐름에서 탈물질주의를 향해 진화해왔다. 18~19세기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반문화로 등장한 부르주아 라이프스타일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면, 19세기엔 다시 부르주아를 넘어서려는 반문화로서 보헤미안, 1960년대엔 히피 그리고 1990년대 보보를 거쳐, 2000년대엔 힙스터와 노마드로 이어져왔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이러한 과정은 전근대사회의 전통 가치와 근대사회의 물질주의가 탈산업사회의 탈물질주의로 이동하는 과정이었다. 부르주아가 물질주의를 대표한다면, 보헤미안부터 힙스터와 노마드는 모두 탈물질주의를 추구한 혁신 세력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나라도 탈산업화라는 도전에 직면해있다. 따라서 개성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일자리와 산업에서 구현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뭔가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로컬만큼 풍부한 '다름'의 소재를 공급할 수 있는 자원은 없다."
- 그렇다면 로컬과 골목길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진원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인 기업이 인간의 본성에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인류 역사를 놓고 보면 대기업은 산업화ㆍ기계화 과정에서 진행한 아주 예외적인 실험이었다. 인간의 라이프스타일로 보면 노마드 1인 기업, 프리랜서가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본성에 맞다. 최근 기술 발전 덕에 이게 가능해졌다.
1인 기업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회계나 행정 업무를 해결해주는 플랫폼 인프라에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 에어비앤비가 플랫폼 참여자들이 동네 투어를 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작은 가게를 창업하도록 플랫폼을 제공한 게 좋은 사례라고 본다. 같은 플랫폼 기업이라도 우버는 그런 게 없다. 우버 드라이버들에게 무슨 창업 기회가 주어지나.
경제학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창업에 대한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기에는 돈만 집어넣고 이자율 떨어뜨리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요즘처럼 1인 창업, 라이프스타일 창업, 로컬 창업이 필요한 시기엔 그에 걸맞은 모델이 필요하다. 그런 게 없다보니 비즈니스 모델의 위기를 겪는 것이다."
- 그래서 장인대학을 강조하는 건가.
"그렇다. 로컬에는 사람이 너무 부족하다. 지역성과 연결된 고유의 콘텐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업가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을 길러내려면 기존 교육과 지원 기관을 연결해 원천 기술, 창업 교육, 창업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장인 대학을 설립해야 한다. 최근 이 모델을 전국 곳곳에서 실험해오고 있다. 정부도 로컬 크리에이터 산업의 육성을 위해 창업자 개개인이 아닌 장인대학과 로컬 생태계에 투자해야 한다.
로컬 콘텐츠를 발굴하고 사업화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하루만 머물면 파악할 수 있는 수준 말고. 그래서 로컬의 상업 자원을 큐레이팅하는 로컬 매거진이 필요하다. 지금도 좋은 동네 잡지들은 있지만 문제는 그렇게 발굴하고 모은 콘텐츠로 사업화를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사업화할 수 있는 로컬 자원이 무엇인지를 개념화하고, 또는 발굴하는 방법론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결국 로컬 콘텐츠를 발굴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는 일이다. 잡지가 로컬 창업의 중심지가 되고, 이게 발전하면 장인대학이 된다. 이런 인프라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