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 수어통역사가 "코로나19 함께 이겨 냅시다"를 수어로 통역하고 있다
사진글방 장은혜
- 재난 방송에서 수어통역 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나?
"질문 자체가 난센스다. 통역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전달하는 역할이다. 저는 뉴스 방송을 주로 하는데,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정치·정당 뉴스여도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 그렇다면 예능과 뉴스에 차이가 있듯 어떤 방송이냐에 따라 통역에 차이가 있나?
"실제 농인들을 만나면 '너 수화 참 잘하는데 왜 뉴스만 하면 못 하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앵커가 감정 없이 뉴스 리포트를 전달하듯 수어통역사도 자기감정을 넣으면 안 된다. 말하는 사람 감정을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 똑같은 문장이라도 예능 패널 표정과 앵커 표정은 다르다. 중요한 사실은 통역사가 주목받으면 안 된다. 그러면 주객전도다."
- KBS가 강원도 고성 산불 논란 이후 재난방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인생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 않나. 지난해 4월 고성에 산불이 났을 때 KBS는 <오늘밤 김제동>을 방송하고 있었다. 다른 방송사는 재난방송 중이었다. 논란 이후 KBS는 24시간 체제의 재난방송을 가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통역사의 노동 강도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졌다. 여러 논의 끝에 올해 3월 23일부터 야간 통역사 네 명이 교대로 KBS에 상주하며 업무를 하게 된다. 의미 있는 작은 변화다."
- 수어통역 관련 에피소드도 듣고 싶다.
"2012년 대선 때 이정희, 박근혜, 문재인 후보가 토론회를 했다. 내가 통역했다. 이정희씨가 사퇴했을 때 '이정희 사퇴로 가장 혜택 본 사람은 박근혜, 문재인이 아닌 수어통역사'라는 말이 나왔다. 이정희씨 말이 너무 빨랐다. 말 속도를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정신이 없을 수밖에.(웃음) 그래서 그런 우스갯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전투적으로 붉으락푸르락 말씀하시는 분들의 발언이 농아인에게 가장 전달이 잘 된다. 문재인 후보는 사투리 억양 때문에 진땀을 뺐다."
- 사투리 통역이 어렵나 보다.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브리핑에서 '10명'을 '십명'이라고 말했는데 발음이 '쉰명'(50명)으로 들렸다. 또 '삼명'이라고 말하면 3명인지 4명인지 헷갈리게 된다. 듣다가 '뭐지?' 하는 순간 한 문장이 지나가 버린다. 실제 통역을 못 하고 날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 통역사들이 100% 완벽하게 통역할 줄 알았다.
"몇 가지 사례가 있다.(웃음) KBS 기자 가운데 이재민, 송금한 기자가 있다. 이재민 기자가 재난 상황을 보도하다가 마지막에 'KBS 이재민'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자기 바이라인을 말한 것인데, '재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 이야기한 거구나' 이렇게 착각한 것이다.
송금한 기자는 보이스피싱 보도를 전했는데, 마찬가지로 '기자가 송금했어? 기자가 사기당한 거야?' 이렇게 실수하게 되고.(웃음) 또 '육일째'로 들려서 '6일 동안'이라는 뜻으로 수화했더니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순간 제대로 못 듣게 되면, 실시간 수어 전달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현재 방송이나 공공영역에서 수어통역 제공 수준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방통위 장애인방송지침에서 지상파 방송의 수어통역 비중은 5%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키는 언론은 KBS 밖에 없을 것이다. 타 방송사 사례를 보면, 새벽에나 수어통역 방송이 송출되는 수준이다. 생각해 보시라. TV를 보는데 편성의 5% 방송에만 소리가 나온다면 보시겠나? 농아인들에게 TV는 사실상 볼륨 꺼진 그림상자다. 무성 영화다. 그러니까 농아인들이 TV를 잘 보지 않게 된다. 언제 수어통역 방송이 나올지 알 수도 없다.
5%라는 규칙 자체도 시혜적 성격이다. 농아인들에게는 일상 곳곳에, 사회 전부에 통역사가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글 자막 나오잖아'라고 반문하는데, 농아인에게 한글 자막은 TV 뉴스에 영어 자막이 나오는 격이다. 외국어를 읽는 것과 같다. 설사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자막 독해는 느릴 수밖에 없다. 농아인들이 자기 언어, 즉 수어 방송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5%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써 100%가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 때 방송에 영어나 중국어 자막이 나오는 걸 봤다. 국내 외국인을 위한 조치인데 우리 농아인들은 그보다 못한 처우를 받고 있다. 당장 수화를 넣으면 빼라고 시청자들이 항의한다. 한 CP(책임 피디)가 '수어방송을 해도 농아인들 반응이 전혀 없다'고 말한 적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 농아인들은 너무나 수어방송을 좋아한다. 다만 이를 표현하기 어려울 뿐이다."
"수어통역사가 대통령 옆에 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