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당 당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n번방'사건 담당 오덕식 부장판사 교체를 촉구하며 기습 시위를 하고있다.
이희훈
직접 피해자들이 나서는 것은 물론 이번에야말로 재발방지 및 사회적‧법적 구조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여성들의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30일 게시 하루 만에 36만이 넘는 동의를 얻어낸 "박사방 회원 중 여아살해 모의한 공익근무요원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란 제목의 청원이 대표적이었다.
"조주빈이 공익근무요원(강아무개씨)과 살해모의를 한 여아의 엄마입니다. 2012년부터 2020년 지금까지 9년째, 살해협박으로부터 늘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고 있는 한 여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중고등학교 교사입니다.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잘못된 고리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글 올립니다.
박사방의 회원이자, 개인 정보를 구청에서 빼돌린 공익근무요원이자, 조주빈과 저희 아이 살해모의를 한 피의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제가 담임을 했던 저희 반 제자입니다."
당해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힘든 청원인의 절박함이, 그럼에도 무릅썼을 용기가 한 문장 한 문장에 박혀 있는 듯했다. 소셜미디어상에선 청원 내용을 접한 이들이 함께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심지어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복역 후 출소 뒤에도 범행을 지속했다는 강씨. 그의 스토킹을 비롯한 갖가지 범죄 행위의 전말은 이랬다.
청원인에 따르면, 고1 학생과 담임선생님으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강씨는 "겉으로는 소심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청원인은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이 원활하지 않았던 강씨를 칭찬과 격려로 상담해줬고, 이후 강씨의 집착이 시작됐다. 이후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 유지를 위해 일정 정도 거리를 두자, SNS 등에서 이중적인 생활을 해오던 강씨가 무섭게 집착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학교 측은 반을 바꿨지만, 강씨가 이를 거부하며 자퇴했고 이후 일반인이라면 경험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물리적·정신적 협박이 계속됐다고 한다. 연락이나 접촉 거절과 경찰 신고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미성년자였던 강씨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고, 그러면 그럴수록 협박과 폭력은 계속됐다고 한다.
개명과 이사는 물론 학교까지 옮기며 강씨를 피하려는 갖은 노력을 했다는 청원인은 결혼 후 결국 강씨를 고소했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출소한 강씨는 아이와 가족에 대한 협박으로 범위를 넓혔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씨가 출소 직후 구청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개인정보 유출과 협박으로 실형을 살다온 사람한테 손가락만 움직이면 개인 정보를 빼갈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다니요. 60년 넘게 잘 살아오던 저희 부모님도 이름과 주민번호를 바꾸었고 평생 살던 지역에서 이사를 가셨습니다. 온 가족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면서 힘들게 노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교육청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사의 사생활 정보가 왜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까. 제가 어느 학교에서 근무하는지 이름만 치면 공지사항에 모두 볼 수 있게 해놓은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민원을 넣었지만 현재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답변만 얻었고 그래서 학교를 옮기면서 또 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의 인권은 어디에서 보장받을 수 있나요."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2012년부터 시작된 강씨의 범행은 끈질겼다. 고교 재학 시절 청원인을 협박, 소년보호처분을 받기도 한 강씨는 2015년 11월부터 2017년까지 총 16회에 걸쳐 협박문자를 보냈다. 그 중엔 '내 목숨을 무기로 쓸 수 있게 되었지'와 같은 섬뜩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경기도 한 병원 원무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던 강씨. 그는 2017년 12월 청원인의 개인정보가 담긴 문서를 복사하고 사본을 유출, 결국 구속수감됐다. 강씨는 1심에서 징역 1년 2월형을 받았고, 2심은 강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 과정에서 강씨는 심신 미약 등을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결국 상고를 기각, 1심 판결을 확정했다.
문제는 작년 3월 출소한 강씨가 수원시의 한 구청에서 남은 복무를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강씨는 재차 청원인의 개인정보를 빼돌린 후 또다시 협박을 이어갔고, 결국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 협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어이없게도, 강씨가 조주빈의 범행에 가담한 것 역시 이 기간이었다.
함께 청원인의 아이를 살해모의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조주빈과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엇갈리는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주빈이 "살해에 가담할 마음은 없었고 돈만 받았다"는 입장인 반면 강씨는 공동 범행을 주장한 것이다.
이렇게 끈질기고 반복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강씨를 청원인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다. 청원인이 청와대 청원을 통해 강씨의 신상공개라도 요청한 절박한 심정은 이 마지막 문장에서도 잘 드러나 있었다.
"신상공개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신상공개를 원한다는 국민 청원글을 보고 또 저와 아이를 협박하겠지요. 그다음에는 정말로 누군가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안전한 나라에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