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맑고 푸르다(사진=CPN문화재TV심연홍기자)
심연홍
청동숟가락에는 '잉벌내력지내미(仍伐內力只內未)'라는 글씨가 표기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금천구는 본래 고구려 잉벌노현(仍伐奴縣)이었다. 문헌 기록으로 보면, 금천구는 고구려의 잉벌노현이었는데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각각 명칭이 변경되었고 현재에 이르렀다. 금천구청 북쪽 독산동에서는 신라시대의 도로와 건물지 등을 포함한 다수의 유적이 광범위한 지역에서 나타났다는 기록도 볼 수 있다.
서울 호암산성은 나당전쟁시기에서 통일신라시기까지 주변의 양천고성, 행주산성, 오두산성으로 연결되는 육로상의 금천지역 거점 성곽이었다. 외침을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축성된 호암산성은 통일신라 후에 국내 정세가 안정되면서 고려와 조선에서는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기능이 점차 사라지고 생활시설 및 의례시설로 변화해간 것으로 추정된다.
호암산성 정상의 한우물은 푸르고 맑았다. 수면에 비치는 나무그림자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물위에 떠있는 붉은 낙엽들이 언뜻 보기에 비단잉어인 줄 알았다. 시대가 수없이 바뀌었음에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존재하는 한우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오아시스다. 사철 마르지 않는다는 한우물은 산 정상에서 만나기에 신비롭고 더 반갑다. 아직 발굴되지 못하고 있는 제2우물지 등에는 어떤 역사적 유물들이 잠들어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