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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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억울할 만 합니다. 김동식이 성착취 영상들을 만들어서 풀거나 보는 그런 추악한 짓을 한 건 아니니까, 그들과 한 무리인 것처럼 불리면 당연히 불쾌하겠죠. 수만 명의 다른 남자들이 그런 거지, 당신은 이번 박사방 사건 이야기를 듣고서 인상을 찌푸리고 화내는 멀쩡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주변 평판도 괜찮고, 꽤나 사려 깊어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런 당신의 모습을 신뢰하고 좋아합니다.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면 안타까울 것 같고, 앞장서서 변호해주고 싶기까지 할 것 같아요. 당신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은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정말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도 괜찮은가요?
동식이와 나의 차이
학창시절 '사회탐구'를 배우면서 '성취지위', '귀속지위'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생각납니다. 성취지위는 개인적인 노력이나 공개경쟁을 통해 얻어진 사회적 지위를, 귀속지위는 개인이 출생이나 직접적인 가족적 배경의 결과로서 할당받게 되는 사회적 지위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이 두 분류의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숲속에서 혼자 살아갈 것이 아닌 이상, 내가 원하고 노력해서 얻은 지위들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지위들과 그 지위에 따른 역할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는 사람의 생각과 성품과 정체성에 깊숙이 파고듭니다.
김동식, 당신은 ㅇㅇ대학교의 우수한 학생이고, 여러 사람의 자랑스러운 친구이고, △△동아리의 분위기 메이커였으며, ㅁㅁ기업의 성실한 인턴입니다. 이것들은 다 당신이 노력해서 얻었어요. 박수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당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들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그대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중산층 집안의 첫째이며, 청년이라고 불릴 나이의 젊은이이며, 남성입니다. 이 중 마음에 드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별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있겠지만 이것 모두 다 당신을 구성하는 요소들입니다.
그 중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의 지위를 가진 것은 당신의 인생에 꽤나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입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전달되지 않는 성에 대한 지식은 폭력적이고 편견에 가득한 온라인과 또래들의 성 담론으로 대체되고, '야동'이라는 이름의 불법촬영물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영상들을 보고 성에 대해 알아갔겠죠.
남성의 성욕은 당연하고 무절제하게 표출되어도 괜찮다는 사회적 통념은 올드하다고 여겨지긴 해도 여전히 존재해서, 성인이 되면 성매매를 가볍게 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남자다움'을 알려주겠다는 인생선배들은 여자를 '보호'하고 잘 '다룰' 수 있는, 마초문화를 그대로 전달해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살아왔다면, 아무리 건강한 인식을 가지고 성장하려고 노력하려고 해도 여성들이 겪는 두려움과 소외에 무뎌지고 웃어넘기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요.
누가 '응애'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가부장제의 폭력에 가담해야지, 결심하면서 태어나나요. 나도 '응애'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남자들에게 분노를 느껴야지, 한 적 없는 것이랑 똑같아요. 그것이 힘이든, 짐이든 간에 다들 의도하지 않은 것을 손에 쥐고 살아가게 됩니다. 차이는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편안했다면, 딱히 손에 뭘 쥐고 있는지 아닌지 인지하기 어려워진다는 점 정도가 있겠죠.
당신은 남자인가, 내 친구 동식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