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 행사에 학생들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꿈틀리인생학교
오늘날 덴마크의 행복사회를 이루는데 가장 핵심이 되었던 교육의 바탕을 세운 이가 바로 그룬트비였다. 그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창했던 교육의 핵심 열쇠 말이 '삶을 위한 학교'였다. '삶을 위한 학교'란 어떤 것인가? 시험도 없고, 배우고 싶은 것을 공부하고, 규칙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그것이 '삶을 위한 학교'일까?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꿈틀리인생학교의 학생들을 보면서 '삶을 위한 학교'의 의미를 조금은 읽을 수 있었다. 불안과 경계심을 가지고 그들은 적게는 한 달, 길게는 수개월을 소진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 반목하고 공격하고 또 일부는 상처받는 모습도 목격되었다. 어떻게 보면 혼란한 상황이었다. 교사들은 이런 상황을 조정하느라 분주하고 에너지가 소진될 지경이었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불안감도 뒤따랐다.
반전이 있었다. 교사들 모두가 지쳐갈 즈음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 시간은 그 어떤 교육과정보다 중요한 시간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문제를 제기하고, 협의하고, 해결해 나아가면서 그들의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조금씩 '행복하다'는 말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을 지나고 2학기에 접어들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다고 했던 일들에,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내고 이 공부에 능숙하고도 진지하게 매진해 갔다.
'삶을 위한 학교'의 의미가 조금씩 엿보였다. 졸업생들은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과정에서 의문이 생기면 꿈틀리인생학교의 교사들과 늘 소통하면서 지낸다. 교사들의 능력으로 그들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어떤 도움이 자신에게 필요한지를 능동적으로 찾아내고 의문을 풀어나간다. 그런 능력을 그들은 삶의 공간에서 스스로 터득해 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교사들은 그날그날 발생한 문제해결에 급급해 따라다니는 상황이기만 했는데, 그들은 훌쩍 자라서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삶을 위한 학교'는 그냥 행복한 학교가 아니었다. 그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갈등은 기존의 교육환경에서 그들이 눌려있음으로 인해 받는 정신적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이 과정을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는 그 과정을 잘 소화해 냈다. 어떤 친구들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또 다른 친구들은 학우들과 또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과의 소통과 지지에 의해서 내면이 단단해져 감을 볼 수 있었다.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생활하면서 함께 자라는 곳